(※ 사견임)
이달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생소한 형식과 내용의 공약이 집권당으로부터 나왔다. 새누리당이 공약 2호라고며 발표한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주『거시경제정책운용』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한은에게 보다 과감한 금융정책 주문", "성장 촉진적 재정정책기조 유지", "보다 적극적인 노동인력공급대책 마련", "글로벌 금융시대에 걸맞는 자본시장 육성" 등 4가지 항목의 공약을 발표했다.
선거에 나선 입후보자나 정당이 내거는 공약은 실천을 전제로 한다. 그러려면 공약 내용은 최소한 자신의 입후보한 지위에서 결정권이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낮이 길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거나 "해를 저녁에 뜨도록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누가 봐도 공약으로 볼 수 없다. 차라리 "가정이 더 화목해 지도록 (정책을 통해 노력)하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최소한 그런 목표를 위해 자신의 지위에서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집권당이 내건 공약 가운데 금융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한은에게 보다 과감한 금융정책 주문"이라는 부분은 성격이 다르다. 새누리당은 구체적으로 "한국판 통화완화정책을 주문"하겠다며 ① 산업은행의 기업구조조정 선도 과정에서의 과도기적 신규자금 공급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은이) 산은채권 인수 ②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을 직접 인수하여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을 20년 장기분할상환제도로 전환을 약속했다.
이 내용이 발표되자 채권시장에서는 채권값이 상승하며 수익률이 하락했다. 대체로 전문가들 반응은 한국은행이 새누리당이 제시한 2가지 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집권당에서 완화적 정책을 주장하는 만큼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압력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후에도 금융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연 한은이 산업은행과 시중은행들(혹은 주택금융공사)로부 채권을 사면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한지,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안에 있어 진짜 문제는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중립적인 위치에서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중앙은행의 고유한 권한을 집권당이 공개적으로 침해하는 내용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국회는 행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에서 한국은행의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일 때가 많다. 그런 국회의 다수당이 한국은행에게 구체적으로 정책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집행을 약속하고 나섰다.
정당이라고 해서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이를 제시하는 것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아니,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국정감사를 받는 기관이며 국회의 회기가 시작될 때마다 총재는 국회에 출석해 보고를 한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총재나 금융통화위원들의 견해를 묻고 토론하는 것이 옳다. 그도 아니라면 국회에서 토론회나 세미나 등을 개최해 자연스럽게 정책에 대한 견해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아니고 총선거 공약으로 한국은행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사안을 집권당이 약속하고 나선 것은 불편하다. 집권당으로서는 한국은행에 압력을 가하고 국민들에게는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결정권이 없는 정책을 선거 공약이라고 내세운 것은 영 어색하다. 더구나 그 대상은 국회가 나서서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할 한국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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