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지난 2013년까지 30여년간 국민연금, 사학연금, 신협, 증권사 등 거대 기관투자자들의 자금 운용을 해 온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은 세 번의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투자 패러다임을 소개하고 이렇게 달라진 환경에서 앞으로 어디에 투자하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전문가답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내용은 당연히 [제4장 대체투자란 무엇인가?] 이하라고 할 수 있다. 즉 앞의 3개 장은 지난 세 번의 금융위기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구분해 놓고 나면 보통은 배경 설명에 해당하는 앞부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내용이거나 어디서 빌려온 내용으로 채워져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기 쉽다. 즉, 결론을 이끌기 위한 장치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저자의 전문가로서의 품격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1장 1990년 일본 자산시장의 붕괴 -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을 절감하다]의 내용 때문이다. 이 장을 읽고 감명을 받은 이유는 저자가 일본의 자산버블 붕괴와 그 이후 지속된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을 설명하면서 철저하게 자산운용 전문가다운 품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끄럽게 국내 언론에 오르내리는 소위 경제전문가들의 책을 보면 상당수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을 언급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 9할 이상은 이런 저런 설명과 함께 인구 구조 변화를 얘기하고, 그 가운데 다시 5할 이상은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뭐 전문가로서 그렇게 믿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런 책 가운데 상당 부분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에 대한 대답 없이 책을 끝내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미국과의 관계라는 국제정세, 잇따른 정책적 실기, 그리고 구조조정 실행 미흡 등 국내적 요인 등 철저히 경제적 상황으로 일본의 자산버블 붕괴 및 디플레이션 장기화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 해도 이 책은 다른 많은 책과 수준이 다른 것이며 나머지 부분은 믿고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되고도 남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 경제가 주는 교훈"(pp64~65)이라는 부분을 인용해 본다. 이 글만 보더라도 "인구" 타령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잘 알 수 있다.
1990년대 일본의 경험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비해 디플레이션이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자산시장이 붕괴될 때에는 좀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었다.
자산시장의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부실화된, 이른바 '좀비 은행'을 그대로 내버려둘 경우에는 끊임없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1997년 일본의 세금 인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역사가 잘 보여주었다. 일본은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는 등 극단적 위기가 찾아오고야 말았다. 물론 의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린 문제이긴 하지만, 경기회복이 확실해질 때까지 재정긴축 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게 각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일본의 디플레이션 문제를 설명하면서 보여준 저자의 전문성 및 전문가로서의 양심은 책의 나머지 내용에서도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아직도 전세계가 완전히 그 여파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설명도 다른 어설픈 작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교훈"(pp147~149) 가운데 다음 일부를 보자.
일단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가장 큰 교훈은 시장이 때때로 비효율적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는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중략) 이제는 유진 파머처럼 '버블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려는 경제학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중략) 앞으로 금융규제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산시장의 변화에 좀 더 직접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런 정책당국의 대응은 자본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또한 이는 투자에서도 새로운 고려사항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후략)이렇듯 "빚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긴 정책이 문제다"라는 식의 감성적 설명을 늘어놓는 책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전문가로서의 식견과 양심적 자세를 바탕으로 저자는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글로벌 투자세계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아까운 국부’가 유출되었다고 안타까워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기는 항상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제는 위기를 피하는 것 못지 않게 위기의 시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자세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이 대체투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과 함께 한국의 자산운용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도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며 따라서 모두가 망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모두 도망가자'라는 식의 감성팔이식 주장은 이 책에는 끼어들 틈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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