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학교 신관호 교수가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기고한 『한국경제 성장 여력에 관한 전망』이라는 글 전문을 공유한다. 특히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차이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비교하며 전문가 행세를 하는 많은 글이 떠돌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조금 길지만 전문을 공유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레스콧 교수가 최근 한국과 미국 경제에 대해 의미 있는 전망을 하였다(특별기고 “Prospects for the US and Korean Economies”). 특히 그는 트럼프 신임 대통령의 새로운 정책을 ① 법인세 인하, ② 과세기준 확대와 한계세율 인하, ③ 생산성 친화 규제완화 정책, ④ 의료서비스 지출 감축으로 요약하고 이러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미국경제는 침체를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도 유사한 정책을 채택한다면 글로벌경제 등의 외부환경과 상관없이 지금보다 더 높은 성장률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정책이 위의 네 가지 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장밋빛 전망은 실현될 수 있을까? 본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프레스콧 교수가 정리한 네 가지 핵심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다루지 않을 예정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는 통상정책을 비롯하여 매우 우려되는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서로 모순되는 정책들도 많아 이와 같은 정책을 모두 다루기엔 지면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와 같은 네 가지 정책을 통해 과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지만 진단하기로 한다. 또한 이를 통해 과연 한국경제에는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도 살펴 볼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답을 하기 위해선 경제성장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이해하여야 한다. 솔로우의 경제성장 이론은 경제성장의 원리에 대해 매우 간명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경제 발전 초기에는 자본이나 노동력과 같은 생산요소의 양적성장에 의해 경제는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생산요소의 양적성장은 한없이 지속되지 않는다. 인구증가율이 낮아짐에 따라 노동력의 증가는 정체되고, 자본 축적에 따라 낮아진 자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자본의 증가율도 둔화된다. 만약에 인구증가가 정체되고 다른 요인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자본의 축적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경제성장률은 0이 된다.
하지만 솔로우는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또다른 요인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총요소생산성이라 불리는, 눈에 띄지 않는 요인이 바로 그것이다. 총요소생산성 증가는 흔히 기술진보라고도 불린다. 기술진보가 생기면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높아져 자본이 증가할 유인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경제는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경제는 궁극적으로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에 의해 성장하며, 자본증가율 및 경제성장률이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율과 같아지면서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이와 같은 상태를 경제성장 이론에서는 균형성장경로(balanced growth path)라고 부른다. 프레스콧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총요소생산성이 평균적으로 1.8% 정도로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자본과 경제(정확히는 1인당 GDP)도 1.8%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경제성장을 설명한다면 한국과 중국이 한때 10%넘게 고도성장을 한 것도 설명 가능하다. 이들 국가들은 균형성장경로에 도달하기 이전인 경제성장 초기에 노동 및 자본의 양적증가라는 경제성장의 보너스적인 요인에 의해 빠르게 성장하였던 것이다(<그림 1> 참조). 또한 이 국가들의 성장률이 최근 둔화되는 이유도 설명된다. 이 국가들이 균형성장경로에 수렴함에 따라 보너스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에 경제성장률도 둔화되는 것이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부터 경제성장률이 점진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중국은 본격적인 경제성장률 하락이 최근에 시작되었다. 결국 한국과 중국도 결국은 균형성장경로에 수렴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에 의해서만 성장할 것이다.
이미 균형성장경로에 수렴한 국가는 성장률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는 것일까? 만약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율 자체가 변화한다면 균형성장경로에서도 경제성장률은 변한다. 다시 말하지만 경제성장률은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율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율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프레스콧 교수는 이에 관한 정책은 다루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이 변하는 또 하나의 경우는 균형성장경로 자체가 위 혹은 아래로 이동할 때이다. 이 때에는 경제가 새로운 경로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성장률은 달라진다. 프레스콧 교수에 의하면 정부정책은 균형성장경로를 이동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그는 미국경제가 글로벌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잘못된 정부정책에 의해 균형성장경로가 아래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최근 성장률이 부진한 것은 미국경제가 새로운 균형성장경로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장률이 일시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트럼프 정책에 의해 균형성장경로가 위로 이동하면 경제가 새로운 성장경로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성장률은 높아질 수 있다(<그림 2> 참조).
정부정책 중에서도 조세정책은 균형성장경로를 이동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법인세를 낮추면 기업은 보다 많은 자본을 축적할 유인이 생긴다. 노동소득세의 한계세율을 낮추면 개인들은 보다 많은 노동을 공급할 유인이 생긴다. 과거에는 이윤과 소득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정부에 내야했지만 세율이 낮아지면 자기 몫으로 챙길 수 있는 부분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 지출의 하락도 결국 국민들의 조세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같은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자본과 노동의 증가가 과거보다 빠르게 이루어짐에 따라 균형성장경로는 상방 이동한다.
균형성장경로를 위로 이동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규제개선을 비롯한 제도변화이다. 과도한 규제가 있는 경우 기업들은 경쟁을 하지 않아도 규제의 보호을 받아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경우 꼭 필요하지 않은 규제를 없애면 기업의 진입이 활성화되어 보다 많은 기업들이 생산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균형성장경로는 위로 이동한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한국에 적용할 경우 한국경제의 성장률도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을까? 지금부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한국에 적용할 경우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전반적인 감세는 정부수입의 감소를 초래하여 늘어나는 복지지출 수요를 정부가 감당하기 어렵게 만든다. 프레스콧 교수는 한계세율을 낮추더라도 늘어난 생산으로 조세수입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경제가 래퍼곡선의 오른쪽에 위치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많은 경험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은 사회복지지출이 GDP의 10.4%로 OECD 국가 중에서 하위에 위치해 있다. 장차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복지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다.
물론 증세가 법인세의 인상을 통해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증세는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가능하다. 한국의 법인세는 최고세율이 22%로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증세는 프레스콧 교수의 설명처럼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부작용이 작은 세원을 찾아 증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세의 가장 큰 원칙 중의 하나는 조세를 부과해도 이를 회피하기 어려운 대상에 증세해야 부작용이 작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절세를 위해 법인세가 낮은 국가로 쉽게 이동한다. 많은 국가들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법인세를 인상하는 경우 기업들이 해외로 도피하여 우리의 생산여력이 떨어질 위험이 높다. 따라서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다른 세원에 대해 증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소득세율 인하는 소득불평등의 악화를 초래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고소득자의 세율을 대폭 낮출 계획이므로 감세의 혜택은 대부분 고소득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실 소득불평등은 어느 수준까지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소득이 동일하게 돌아간다면 누구도 열심히 일할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어느 정도 노력과 능력에 따라 소득이 달라져야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최근 IMF의 연구에 의하면 지나친 소
득불평등은 오히려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한다.
소득불평등이 너무 심하면 사회적 갈등 및 불안이 커져 투자를 방해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적 갈등도 이미 임계치에 이르렀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이 더욱 악화된다면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고소득자의 조세부담을 늘리고 저소득자에 대한 복지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
셋째, 규제개선을 통해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프레스콧 교수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규제개선 등의 제도적 정비는 사실 미국보다도 오히려 한국경제의 성장에 더 필요하다. 규제완화나 제도면에선 미국이 한국보다 앞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낮은 편인데 이는 의료, 유통, 금융, 비즈니스 서비스업 등에서의 과도한 규제와 관련이 있다. 한국정부도 꾸준히 규제를 개선하고자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규제개선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규제의 보호하에서 이득을 취하는 이익집단이 규제개선에 대해 저항하기 때문이다. 프레스콧 교수는 경제상황이 안좋을 경우 제도개
선을 하기 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규제개선의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단기에는 오히려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가 침체된 상태에서 단기적일지라도 경제를 더 악화시키는 규제개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규제개선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규제개선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통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대형마트를 허용하면 골목상권의 소상인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득불평등은 더욱 악화되므로 사회적 저항이 커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규제개선을 위해서라도 사회보장 정책의 확대가 불가피하다. 즉 사회보장정책으로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줄여가며 점진적으로 규제개선을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프레스콧 교수의 권고가 아쉬운 점은 경기변동에 대응하는 재정 및 통화정책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프레스콧 교수는 일단 수렴이 끝나면 대체로 경제가 균형성장경로에 위치한다고 믿는다. 다만 균형성장경로 자체가 이동할 때에만 경제가 새로운 균형성장경로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균형성장경로에서 벗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케인즈적인 전통적인 견해는 균형성장경로 자체의 이동이 없이도 경제가 일시적으로 균형성장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즉 경기침체는 경제가 균형성장경로로부터 벗어나 아래에 위치하며 성장이 둔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성장하락에 대응하여 재정 및 통화정책을 집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재정 및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릴 뿐 결국에는 균형성장경로로 복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재정 및 통화정책의 역할은 경제가 균형성장경로로 복귀하는 시간을 단축하지만 장기적인 경제의 성과는 재정 및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그림 3> 참조).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경기침체와 관련하여 이력(hysteresis)현상에 주목한다. 이력현상이론에 따르면 재정 및 통화정책을 적절히 사용하지 않는 경우 경제의 기초체력이 손상되어 원래의 균형성장경로로 영영 복귀하지 못한다. 이력현상은 특히 노동시장에 주목하는데, 경제침체를 오랫동안 방치할 경우 장기실업자의 숙련도가 급속히 감소하여 이들이 노동시장에 복귀하더라도 원래의 생산성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균형성장경로 자체가 아래로 이동한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고 경제는 이 새로운 균형성장경로에 따라 성장해 간다. 따라서 적절한 재정 및 통화정책을 집행하지 않는 경우, 원래의 균형성장경로보다 소득수준이 낮게 유지된다는 것이다(<그림 3> 참조).
따라서 경기침체가 오래될 경우 재정 및 통화정책을 활용할 필요가 더욱 높아진다. 한국의 경우 현재의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인 1.25%이다. 반면 미국은 금리인상을 본격화하고 있어 우리만 금리를 더욱 낮추는 것은 부담스럽다. 또 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인 가계부채를 감안할때, 가계부채를 더욱 늘릴 수 있는 금리인하의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사실 고령화 추세와 늘어나는 복지지출을 감안할 때 국가부채를 늘리는 재정정책도 쉽게 확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국가부채는 GDP의 40%대로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낮다. 따라서 어느 정도 여력은 있는 상태이다. 또한 조세수입은 GDP 수준에 의존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재정정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이력현상으로 GDP 수준이 영원히 낮아진다면 조세수입도 영원히 낮아질 수 있다. 결국 재정정책을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국가부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즉 재정정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경우 단기적으론 국가부채가 늘어날 수 있지만 GDP를 증가시켜 조세수입을 늘리고 장기적으로 국가부채는 감소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현재로선 재정의 여력이 있어 보다 과감한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소득불평등이나 가계부채 문제를 감안할 때 일자리 확대와 같은 재정정책은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가계의 소득을 늘려 가계부채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프레스콧 교수의 견해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여러가지 한계가 있다. 적절한 권고는 과감하게 수용하되 부적절한 부분은 배제하고 우리 실정을 감안하여 보다 적합한 정부정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경제의 성장 여력을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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