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조직지도부의 생존전략과 전망
김정일 시기 북핵은 체제 생존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체제 보장을 놓고 미국과 협상할 수 있는 협상 수단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기 북핵은 체제 생존 그 자체이며, 따라서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어떤 협상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핵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협상용’에서 ‘생존형’으로 진화한 것은 북한의 핵 능력이 사실상 고도화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성택 숙청이후 조선노동당(이하 당) 중심의 유일지도체제가 확립된 북한 엘리트 지배 구조의 변화도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reuters.com) |
당조직지도부는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두 가지 정책을 실시하였다. 첫 번째는 김정은에 대한 불경죄를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하여 현영철 총참모장과 김용진 부총리 등 군부와 내각의 최고 엘리트를 고사포 등으로 무자비하게 처형하였다. 장성택 숙청 이후 약 140여 명의 당・정・군의 고위 간부가 숙청되었으며, 숙청 이유 중 최고존엄에 대한 불경죄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두 번째는 당이 핵과 미사일 실험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과거 핵과 관련하여 핵개발은 당군수공업부에서 담당하고 실험은 군부로 인계하는 2원화 체계로 운영되었으나, 핵과 미사일 실험에서 선군을 내세운 군부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핵개발과 핵탄두 소형화 등 고도화 작업이 당조직지도부의 지도로 당군수공업부 산하 핵무기연구소로 바뀌었다. 핵탄두 운반 발사체인 모든 미사일 시험 발사도 제4병종으로 분리된 ‘전략군(화성포병부대)’에서 주관하였다. 이것은 핵과 미사일 개발과 실험에서 군부의 개입을 차단하면서 전략무기에 대한 당의 지휘통제체계를 강화한 조치로 분석되고 있다.
당조직지도부는 권력 도전세력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여 빨치산 세력인 최룡해와 군부의 정찰총국장인 김영철을 혁명화 교육 후 복귀시켰으며, 북한 체제보위의 최고 실세였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숙청하였다. 이처럼 정치권력을 장악한 당조직지도부는 이후 당39호실을 통해 군과 보위기관에 흩어졌던 외화벌이 무역회사를 통합하여 김정은 통치자금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미치광이 전략’을 감행하는 것은 당조직지도부 중심의 유일지도체제가 확립되면서 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와 김정은 통치자금의 원활한 공급이 당조직지도부의 생존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이 금수조치에 가까운 대북제재를 가하지 않는 한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 북핵 문제에 대한 미중의 대립과 전략
(1) 미국의 ‘중국책임론’과 전략
지난 3월 21일 미 하원(공화와 민주 공동발의)은 4월 6 – 7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초강경 대북제재안인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을 발의했다. 북한에 대한 원유・석유제품 수출 및 해외 근로자 고용 금지와 국제금융체제에서 북한 퇴출 그리고 어업권까지 사실상 금수조치에 가까운 제재를 포함시켰다. 이 법안의 목적은 중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의 전면적 시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이다.
현재 허버트 맥매스터(H. R. McMaster)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주도하는 새 대북정책 보고서가 작성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중국을 겨냥한 강력한 경제제재와 선제타격(pre-emptive attack)을 포함한 군사적 조치 등 모든 선택 가능한 옵션들이 고려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20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따른 세 가지 선택(three unappealing choices)을 분석하면서 미국이 모든 선제공격에서 세 가지 문제(보복의 문제, 확전의 문제, 전략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군사적 옵션은 “최고의 나쁜 제비뽑기”(the best of a bad lot)라고 혹평했다.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 또한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경제제재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미국의 주요 언론과 전직 고위 관료들에게서 대북 선제공격에 대한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더 진전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먼저 대(對)중국 경제 압박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시도할 것이다. 북한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면서 ‘세컨더리 보이콧’의 전면적 시행으로 대중 압박이 고조되면 중국의 다수 은행과 기업이 제재 대상에 포함되어 미중간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할 경우 미국의 대북전략은 틸러슨 국무장관이 밝힌 것처럼 ‘한일 핵무장 허용’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2) 중국의 ‘미국역할론’과 전략
지난 2003년 이후 6자회담을 통해 얻은 역사적 경험은 중국이 북한 체제를 불안정으로 몰고 갈 정도의 대북제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방중에서도 중국은 북핵의 위험성에는 공감했지만 그 해법은 ‘압박’보다는 기존의 입장대로 ‘대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결국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병행하자는 ‘왕이(王毅) 프로세스’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내 관영매체를 비롯해 정부와 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북한의 핵무장에는 반대하지만 중국이 북한을 굴복시킬 정도의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미국역할론’의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최대 경제교역국으로 북한의 대외무역규모 62억5천만 달러 중 대중 무역이 57억 1천만 달러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북한이 소비하고 있는 원유 및 석유제품은 사실상 중국이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전면적인 대북제재는 북한의 비핵화를 강제하는 결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이런 조치를 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금수조치가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엘리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당조직지도부가 중국의 금수조치로 인해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북한 내 권력 구조의 특성상 조직지도부에 대한 숙청이 이뤄지면서 당의 엘리트 지배체제가 붕괴될 수 있으며, 그 결과 북한이 큰 정치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실제 사용할 수 없는 영향력이 된 것은 김정은 체제의 붕괴가 핵을 보유한 북한보다 더 큰 전략적 불확실성을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의 전면적인 시행으로 중국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미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역할론’을 강조하며 대북 정책의 기조를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 향후 한반도 정세와 정부의 대응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점증하는 미중의 갈등과 북한의 지속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안보 위협이 크게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이 ‘중국책임론’과 ‘미국역할론’으로 서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뿐만 아니라 ICBM 시험 발사도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의도는 파키스탄식 핵보유 절차에 따라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ICBM을 통해 미 본토를 겨냥한 효과적인 위협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과 ICBM에 대한 미국의 안보위협인식이 현실화된다면 대북 군사적 옵션은 논의단계를 넘어 실행단계로도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북핵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상정하고 이에 맞는 정책 옵션을 대입하는 방식으로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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