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주요 내용을 공유한다. 보고서 원제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제재에 대응하는 중국의 전략과 시사점』이며 보고서 전문은 여기를 클릭하면 구할 수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
미국은 반도체 기술의 비교우위를 기반으로 반도체 생산은 아웃소싱에 주력하면서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시켜 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공장 등으로 제조 부문에서는 해외 의존도가 높아졌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로 기술 역량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위협론과 대중국 기술 견제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11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는 바이든 행정부에 반도체 부족사태에 따른 산업 및 국가안보 위험에 대한 서한을 제출하였고, 국내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줄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바이든 미 대통령은 2월 24일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바이오의약품 등 4개 품목에 대해 100일간의 공급망 조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하면서 공급망 재편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의 75%와 주요 원료 공급이 중국과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9년 기준 국가별 반도체 웨이퍼 생산 능력은 대만,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만 75%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은 13%에 불과하다. 또한, 최근 미국의 반도체산업 정책은 최근 공급망 재편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기술 육성 전략도 강조하고 있다. 기존 중국기업의 수출제재 등을 통해 중국 반도체 기술의 추격을 지연하기 위한 전략에서 미국 내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산업육성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지난 해부터 ‘CHIPS for America Act(2020.6)’, ‘American Foundries Act(2020.7)’,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2021.1)’ 등의 법안을 발의하며 반도체산업 육성을 강화하고 있다. 3개 법안 모두 반도체산업의 생산 분야에 대한 세액공제, R&D 확대, 인력양성, 보조금 혜택 등의 산업경쟁력 강화 정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올해 3월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mmission on 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NSCAI)는 지난 3월 1일, ‘최종 보고서(Final Report)3)’를 통해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가 AI 경쟁력 확보에 필수라고 분석하면서 중국 견제전략을 강조하였다. 특히,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중국보다 2세대 앞서 나가도록 하는 동시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하도록 칩 제조기술에 대한 초크 포인트(choke point)를 강화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 및 기타 유망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하여 2026년에 320억 달러에 이를 때까지 AI 역량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능가하고 전 세계 신기술 개발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공급망 제재에 대응하는 중국의 전략
(1) 신기술 개발을 통한 기술자립 강화
그동안 중국은 전략적으로 신산업 분야의 육성을 서두르면서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이에 힘입어 반도체산업도 자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까지 중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동하면서 중국의 반도체산업은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의 외국기업을 활용한 성장방식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5년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40% 달성한다고 목표를 설정하고, 반도체산업에 대한 기술 자립화에 대한 전략을 가속화하면서 전방위적 노력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2020년 기준 반도체 분야별 중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2020년 기준 2~18%에 불과하며,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단기간 내에 목표 달성은 어려워졌다.
지난해 8월 중국국무원은 ‘신시대 직접회로 산업 및 SW산업 고품질 발전 추진정책’을 통해 28nm 이하의 반도체 제조기술을 가진 기업이면서 15년 이상 영업중인 기업의 경우 10년간 법인세 25%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기술은 여전히 다른 반도체 제조강국 대비 3~4단계 뒤져있는 상황이다. 한국, 대만, 미국은 5nm의 미세가공기술을 상용화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아직 14nm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공급망 제재에 직면한 중국은 현실적으로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대응 방향도 분명해 보인다. 중국 정부의 입장은 반도체 기술에 대한 기술자립 전략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중국내 공급사슬 안정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기반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중국 리커창 총리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업무보고에서 “십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연마하는 정신(十年磨一劍, 십년마일검)”으로 과학기술 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양회 기간 동안 발표된 14·5 규획(2021~2025) 초안에서는 미국의 공급망 조사 대상인 반도체를 7대 핵심 육성 기술4)로 선정하면서 단순 공급 차원이 아닌 기술문제로 접근하였다. 기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해외 반도체 기업 M&A 전략에서 벗어나 반도체 기술개발 확대 정책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14·5 규획에서는 반도체 글로벌 가치사슬상에서 중국이 비교적 취약한 분야였던 집적회로 설계, 중점 장비 및 고순도 반도체 재료 등 핵심 기술 배양을 통한 연구개발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기초부품, 핵심기초재료 등 근본적인 기술 배양을 통한 난관 극복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제3세대 반도체 기술개발 지원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14·5 규획 반도체 기술 지원정책 중 실리콘카바이드(SiC), 질화칼륨(GaN) 등 차세대 반도체 재료의 연구개발 강화를 공식적으로 문건에 명시하면서 강력한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과 더불어 중국의 지방정부도 클러스터 육성, 인재 육성, 프로젝트 투자 촉진 등을 통해 3세대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3월 상하이 정부는 ‘상하이린강신구 집적회로산업 전용 프로젝트(2021~2025)’를 발표하고 상하이에 제3세대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고, 2025년까지 직접회로 종합 산업혁신 기지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직접회로 산업 전용 계획에서 6인치와 8인치 갈륨 비소(GaAs), 제3세대 탄화규소 SiC(실리콘 카바이드)와 질화갈륨(GaN) 반도체 가공라인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시는 2019년 8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중관춘에 ‘중관춘순위원 제3세대 반도체산업 발전에 대한 조치’를 발표하고 3세대 반도체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였다. 주로 설계 분야에 중점을 둔 혁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스타트업의 연구개발, 공정설계, 시제품 생산,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터를 구축하였으며, 기업당 10만 위안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2) 반도체 인재육성 및 세금우대 정책 확대
중국정부는 독자적 기술 확보를 위해 반도체 인재 육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1차적 핵심정책은 반도체 전문대학 설립, 기존 관련학과 확대 등 대학기능 강화와 세금우대 정책의 도입이다. 앞으로도 강력한 인력양성 후속조치가 지속적으로 수립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대학기능 강화의 경우,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장쑤성 난징에 ‘난징반도체대학’이 설립되었다. 반도체 인재 육성과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동 대학은 반도체산업 전체 공급망을 포괄하는 커리큘럼을 개설하며, 반도체 설계, 제조, 장비 등 전 영역에 걸쳐 개발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리소그래피 장비 등 중국이 취약한 가치사슬 분야에서 중점적인 투자와 인재육성이 이뤄질 전망이다. 아울러, 지난 4월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칭화대도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했다.
칭화대 반도체 단과대학은 기존에 있던 2개 학과, 마이크로전자·나노전자과와 전자공학과를 합쳐 출범했다. 집적회로 단과대 설립과 관련, 핵심 기술 혁신 인재를 배양해 중국이 당면한 반도체 기술의 치명적 난제를 돌파하고 중국 반도체 기술 자강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도 제시하였다.
지난 3월 중국 국무원 학위위원회는 직접회로(반도체) 학과를 기존의 전자과학기술학과에서 독립해 별도의 과로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반도체 학과를 1급 학과로 선정해 기존의 ‘2급 학과’에서 ‘1급 학과’로 격상시키고, 향후 반도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과를 신설해 반도체 인재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기존 중국은 고액연봉을 제시하며 한국, 대만 등의 반도체 기업에서 반도체 인재를 유치하는 전략을 취해왔으나, 이제는 단과대 설립 등을 통해 중국 내에서 반도체 인재를 배양하고 기술의 자립자강을 실현하고자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중국정부는 세금 우대 정책 등을 발표하며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한 환경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분야의 수입확대를 지원할 전망이다. 중국 재정부, 해관총서, 국가세무총국은 지난 3월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한 수입관세우대 및 세금 감면 등 일련의 특혜정책들을 발표했다.
65나노 이하 메모리 반도체 제조나 최첨단 특수공정제품 생산기업들의 경우 2030년까지 원자재 및 장비 수입 관세를 면제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실리콘 웨이퍼나 반도체 재료 등 반도체 자체 생산용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에도 면세 혜택이 적용되며, 반도체 장비 수입 기업들은 수입 설비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세금 혜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이 추진하는 이러한 세금우대 정책은 미국 입장에서 또 하나의 우려가 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미 의회조사국(CRS)은 중국의 이러한 세금우대 정책을 누리기 위해 해외기업이 중국 내 이전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강조한 바 있다.
(3) 중국 IT 기업의 AI 반도체 투자 확대
최근 중국은 기존 반도체 업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인터넷·SW 등 다양한 IT 기업이 AI 반도체 연구개발과 투자를 확대하며 자체 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AI 반도체는 중국기업들이 특히 많은 관심을 가지는 분야인데, AI 반도체 사업 확대를 통해 산업생태계를 확장하고 시장을 선점하여 반도체 자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틱톡(TikTok)’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ByteDance)는 지난 3월 AI 반도체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AI 반도체 개발팀을 구성하고, 인재를 영입하여 반도체 설계회사 ARM의 설계에 기초한 서버용 칩을 제작하는 등 반도체 사업을 확장할 방침이다. 바이트댄스가 반도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데이터 처리와 소셜app의 AI 등 용도에 맞춘 반도체 개발과 생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트리오 인터넷 기업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도 모두 칩 개발에 합류했다. 바이두는 14나노 공정 기반 ‘쿤룬(Kunlun)’이라는 AI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고 양산하고 있으며, 이를 검색, 공업인터넷(IIoT), 스마트교통 등 산업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7나노 공정기반 ‘쿤룬2’도 곧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AI 반도체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알리바바는 2018년 핑터우거(平頭哥)라는 반도체 부문을 출범시키고, 2019년 AI 반도체 한광(含光)을 발표했다. 동 제품은 스마트교통, 전자상거래 등 알리바바의 핵심 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텐센트는 2020년 3월 선전에 텐센트클라우드를 설립하면서 자체 반도체 개발을 시작했다. 올 초에는 반도체 스타트업인 엔플라임 테크놀로지(Enflame Technology, 燧原科技)에 약 18억 위안을 투자했하면서 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화웨이는 자회사 하이실리콘(海思, HiSilicon)을 통해 AI 반도체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화웨이는 2019년 8월 AI 모델의 훈련속도를 향상시킨 AI반도체 ‘어센드(Ascend)’를 출시하였으며, 2019년 1월에는 쿤펑920(鯤鵬920)을 공개하는 등 독자적인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 미국의 설계소프트웨어(EDA)를 사용한 화웨이는 미국의 거래규제로 위기에 닥치면서 중국내 칩 설계, 장비, 팹리스 등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자체 AI 반도체 기술력 마련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Fortune Business Insights(2021)에 따르면, 주요 인공지능 20개 기업 중 14개가 미국 기업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알리바바, 화웨이 등의 중국 IT 기업도 뒤를 따르고 있어 향후 AI 반도체 분야에서도 미·중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