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 따라잡았고, 이제 곧 수백년 전처럼 세계 최대 강국으로 우뚝 서리라는 자신감에 넘쳐 나던 중국이 아직 중진국 대열을 벗어 나기도 전에 디플레이션 및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지는 걱정을 하게 됐다. 지난 10월 중국의 소비자 및 생산자 물가지수가 모두 지난해 같은 달보다 하락하면서 저물가 흐름이 장기화하고 있어서 갖가지 진단이 나오는 상황이다.
애초 주요 기관들은 경제 재개방 효과 등으로 물가가 완만하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해 왔으나, 실제로는 저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나오고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디플레이션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지배적인 전망은 중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보다는 서서히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경기 회복세도 가팔라지리라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명목화폐(fiat currency, 불환화폐) 자본주의 체제에서 디플레이션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아주 어려우며 적절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더구나, 중국은 겁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는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 면에서 여전히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지난 1990년만 해도 1인당 GDP가 미국의 30%대 중반에 그쳤었으나, 이후 빠른 성장을 유지하면서 2020년 70%를 넘길 정도로 전례없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런데, 중국이 디플레이션 우려나 장기 저성장 기조 우려 속에서도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다. 대표적인 해석으로는 부동산 부문의 부실과 비리 관행이 너무 심각해서 경기 부진을 무릎쓰고라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단계라는 판단을 당국이 했으리라는 논리다. 경기 부양책은 결국 부동산 부문까지 유휴 자금이 흘러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섣부른 부양책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해석은 시진핑 주석의 일인 장기 통치에 대한 명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비리 척결과 부채 구조조정이라는 성과가 필요하리라는 논리다. 시 주석은 이전 두 지도자와는 달리 10년 통치 후 퇴임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장기 통치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러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대만 통일이 아닌 다음에야 대대적인 성과가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따라서, 정치, 사회, 경제 부문에서의 비리와 방만한 관행을 척결했다는 성과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한편,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중국 경제 구조상 전 세계 소비 수요가 하향 조정 국면에 들어간 가운데 웬만한 부양책을 쓴다고 해도 성장률은 크게 높아지기 어려우리라는 판단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찌 됐건, 중국은 물가 지표와 경제 성장 지표의 부진에도 섣불리 경기 부양책을 쓰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금융센터가 최근 중국 인플레이션 상황에 관한 주요 해외 기관들의 평가를 정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요약 부분만 공개돼 본 블로그에 소개한다.
(출처: www.bjreview.com) |
[전망] 부동산시장 부진 및 재고 누적 등이 저물가 요인으로 작용하겠으나, 경기부양책 등에 힘입어 내년에는 완만한 물가 회복을 기대(CPI 금년 0.5%, 내년 1.7% 예상, IB종합)
- (부동산시장 부진) 주택가격 하락세 및 거래량 감소세가 당분간 지속되면서 관련 소비 및 투자를 위축시키고 가계의 부동산 소득도 제약할 소지
- (소비수요 회복 지연) 재개방 이후에도 보복소비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서 예비적 저축이 증가한 데다 누적된 산업재고도 줄어들지 않아 저물가 요인으로 작용
- (경기부양책 강화) 그러나, 부동산시장 활성화 및 금융지원 확대 조치로 유동성 공급이 늘어나면서 소비 회복세가 지속되고 저물가 기조도 완화될 전망
- (식품 등의 가격회복) 금년 말부터는 계절적 요인 등으로 돼지고기, 신선채소 등의 가격 하락세가 완만해지면서 내년 소비자물가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
- (IB 전망) 기저효과와 경기부양책 등에 힘입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금년 0.5%→내년 1.7%,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2.9%→0.9%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전망(Bloomberg)
[영향 및 시사점] 중국의 저물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경기회복이 지연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 다만, 중국의 수출물가 하락 등이 주요국 인플레이션 완화에 기여하는 점은 전세계 경제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소지
- (저물가 장기화 우려) 저물가가 당분간 지속되더라도 일각에서 우려하듯 중국 경제가 일본형 장기 저성장에 빠질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 그러나 저물가 흐름이 기업의 수익성을 저해하면서 대차대조표형 불황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
- (전세계 인플레이션 완화 기여) 중국의 생산자물가 하락으로 수출물가도 마이너스로 전환했으며 이는 금년 하반기 전세계의 근원 인플레이션을 약 70bp 낮출 것으로 추정(J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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