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수십년 째 계속되는 디플레이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써 본 적이 없는 다양한 통화‧재정 정책을 펼친 결과 최근에는 인플레이션율이 드디어 목표치인 2%를 넘나드는 '감격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임금 상승률은 실질 기준으로 별로 높아지지 않아 미스테리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주요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독려하기도 하고 간접적이나마 노동계 쪽을 지원하는 듯한 자세도 취하고 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도 공식 인플레이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더딘 임금 상승률을 이유로 들며 초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 노동시장 동향을 잘 정리한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와 소개한다. 보고서에는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 부담이 발생하는 수준 주변에서 벌어지는 근로시간 조절 등 이른바 '연수입의 벽'이라는 특유의 현상을 소개하고, 이것 때문에 취업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는 취업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수입의 벽' 같은 현상은 어떤 제도가 의도하지 않는 부정적 효과를 내는 단적인 사례다.
(인력부족 심화 및 미스매치 지속) 서비스업 및 소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구인‧구직간 미스매치 현상이 지속
ㅇ 일본은행 단칸의 고용상황 DI(인력과잉 응답(%) - 부족 응답(%))는 –33%p로 코로나19 이전 최저 수준에 근접하였으며, 특히 중소기업(-36%p) 및 비제조업(-42%p)에서의 인력 부족이 심화
- 비제조업 중에서는 숙박음식(-72%p), 건설(-54%p), 개인서비스(-51%p) 순으로낮게 조사
ㅇ 금년중 산업별 취업자는 숙박‧음식업 등을 중심으로 증가하였으나 숙박‧음식업종 취업자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판매‧서비스업종에서의 구인‧구직 미스매치가 지속
- 금년 1~9월 중 산업별 취업자 증가는 숙박‧음식업이 +17만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밖에 제조업(+8만명), 건설업(+7만명) 등의 순
- 숙박‧음식업 취업자수는 393만명(‘23.1~9월 평균)으로 코로나19 이전(418만명, ’19.1~9월 평균)을 하회
- 직업 형태별 유효구인배율은 사무직이 0.44배로 초과공급 상태인 반면 서비스직(3.09배), 판매직(2.06배), 생산직(1.73배) 등 현장‧생산직에서의 인력초과 수요가 지속
(파트타임 취업자 비중 상승) 전체 취업자 중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이 상승하는 가운데 파트타임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감소
ㅇ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은 ‘23.9월 32.3%로 ’22.9월(31.7%)대비 0.6%p 상승하였으며, 파트타임 근로자의 총 근로시간은 ‘23.3분기 1.4% 감소(전년동기대비)
- 특히 금년 하반기 이후 근로시간 감소 경향이 뚜렷해지는 모습
ㅇ 파트타임 비중 증가 및 근로시간 감소는 경기적 측면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겠으나 노동공급이 여성 및 고령층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 금년 1~9월중 남성 취업자는 5만명 감소한 반면 여성은 25만명 증가하였으며, 연령대별로는 고령층(55세이상, +36만명)이 큰 폭 증가
- 남성 취업자수는 코로나19로 큰 폭 감소한 이후 감소세가 이어지는 반면 여성 취업자수는 2020년을 제외하고 견조한 증가세가 지속
- 연령대별로 보면 주 노동연령(25~54세)의 고용률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인구 감소로 취업자수가 감소하는 반면, 55세 이상 연령층이 전체 취업자 증가를 주도
- 특히 기혼여성의 경우 연수입이 일정 수준을 상회할 경우 배우자 부양에서 벗어나 사회보장비용 지출 등으로 노동시간이 늘어나도 수입이 줄어드는 ‘연수입의 벽(파트타임 근로자에게 세금납부, 사회보험료 부담 등이 발생하는 연수입을 의미)
- 취업시간을 조정하는 근로자의 대부분이 기혼‧여성이며,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연수입대는 50~149만엔에 집중
(예상보다 낮은 임금상승률) 초과 노동수요 및 춘투에서의 높은 임금인상 협상 결과에도 불구하고 명목임금 증가율은 예상보다 저조
ㅇ 금년 1~9월중 급여 총액 증가율은 1.3%로 춘투 협상 결과 2.12%를 크게 하회하고 있으며, 특히 하반기 이후 임금 증가율은 1%를 밑도는 부진
ㅇ 낮은 임금 증가율은 ①춘투에 포함되지 않는 중소기업의 부족한 자금 여력으로 실제 임금인상이 여의치 않았거나 ②근로자의 파트타임 취업 증가 및 근로시간 축소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 자본금 10억엔 이상 기업의 경우 코로나 이후 공급망 정상화 및 엔화 약세 등으로 이익률이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코로나 이전과 유사한 수준에서 횡보
- 일반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은 +1.9%(급여 총액 기준), 파트타임 근로자는 +2.4%로 춘투 협상결과 수준에 대체로 부합하여 파트타임 근로비중상승이 전체 근로자의 임금상승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
전망
ㅇ 일본의 노동시장은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 및 취업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구조적인 인력 부족 현상이 내년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음
ㅇ 여성과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노동 투입 확대가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구인‧구직 미스매치가 지속되면서 현장‧생산직을 중심으로 인력 부족이 심화
- 여성의 경제활동인구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으나 노동 투입량 증가폭은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정체 국면에 돌입
- 15~6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72.5%, ‘22년기준)은 G7(69.4%) 및 OECD(63.7%) 평균을 상회하는 높은 수준
- 65세 이상의 경제활동참가율도 2020년 이후 상승 추세가 멈춤
- 이는 2020년 이후 65~74세 인구는 감소(‘19.12월 1,738만명 → ’23.6월1,635만명)한 반면 경제활동참가율이 크게 낮아지는 75세이상 인구(1,854만명 → 1,987만명)는 늘어난 데 기인
ㅇ 다만 단기적으로는 생산비용 상승 및 글로벌 경기 둔화 등에 따른 생산 부진을 반영하여 제조업을 중심으로 구인난이 일부 완화될 가능성
- 유효구인배율(구인수/구직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금년 들어 완만하게 하락(‘22.12월 1.36 → ’23.10월 1.30)
- 유효구인수는 7월 이후 감소하고 있으며, 주요 업종별 신규구인은 숙박‧음식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감소세로 전환
ㅇ 한편 내년도 임금은 ①예상보다 더딘 물가상승률 둔화 ②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이익 증가세 ③인력 부족 지속 가능성 등으로 금년 수준의 상승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
ㅇ 연합(連合)은 내년도 임금인상 목표를 ‘5% 이상’(정기승급분 포함)으로 설정하고 금년(‘5%정도’)보다 높은 임금인상을 위해 노력할 방침을 천명(‘23.12월)
- 그 외 전국섬유화학식품유통서비스노조(UAゼンセン), 일본금속기계산업노조(JAM)도 금년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률을 목표로 설정
- 주요 IB는 춘투 협상 전망치를 3% 중반대 수준으로 예상하며 금년(3.58%, 연합기준)과 유사한 수준에서 임금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
- Nomura 3.3%, 다이이치생명 3.7%, 닛세이기초연구소 3.7%, 이토츄총연 4.1% 등
ㅇ 다만 실질임금의 경우 동 수준의 임금인상에도 정기승급분을 제외한 명목임금 상승률이 금년과 유사한 2% 내외 수준에 그침에 따라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 등을 감안할 때 증가로의 전환은 다소 불확실한 상황
-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신선식품 제외): 일본은행 2.8%(‘23.10월), 일본경제연구센터 2.1%(민간기관 36개 평균, ’23.11월)
※ 연수입의 벽(年収の壁)이 무엇이길래
□ ‘연수입의 벽’이란 파트타임 근로자에게 세금 납부나 사회보험료 부담이 발생하는연봉 수준을 의미하며 103만엔, 106만엔, 130만엔 및 150만엔의 벽 등이 있음
- 세금납부 관련 : 소득세 부과가 시작되는 103만엔의 벽, 기혼인 경우 배우자의 소득세 특별공제 감액이 시작되는 150만엔의 벽
- 사회보험료 관련 : 기혼인 근로자가 배우자의 부양에서 벗어나 직접 사회보험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106만엔(종업원 101명이상) 및 130만엔(종업원 100명이하)의 벽
□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파트타임 근로자의 임금이 상승하는 가운데 근로자들이 ‘연수입의 벽’을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근로시간을 축소‧조정함에 따라 인력 부족의 한 요인으로 작용
- 특히 사회보험료 부담이 발생하는 부분의 경우 근로시간이 늘어나면 실수령액이 즉각 감소함에 따라 근로시간 증가를 막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음
- 세제상의 벽은 근로시간 증가에 비례해서 수입이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파트타임 근로자의 소득세 부담은 크지 않고 배우자 특별공제가 감액되더라도 근로소득 증가에 따른 수입 증가로 상쇄가 가능
- 파트타임 근로 여성 3,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취업 조정을 하고 있다’는 응답이 61.9%, ‘실수령액이 줄지 않으면 근로시간을 늘릴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78.9%(매우 그렇다 36.8%, 어느 정도 그렇다 42.1%)로 조사(노무라, ‘22.9월)
- 취업조정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57.3%는 130만엔 벽, 21.4%는 106만엔 벽을 의식하고 있다고 응답하여 사회보험료 납부가 근로시간 조정의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나타남(파트타임‧유기고용 노동자 종합실태조사, 2021년)
□ 일본 정부는 106만엔 벽에 대해서는 1인당 최대 50만엔의 보조금을 3년간 지급, 130만엔 벽에 대해서는 향후 2년간 배우자 부양 포함 등의 ‘연수입의 벽 지원 강화 패키지’를 마련‧시행(‘23.10월)
- 전문가들은 도소매업, 숙박음식업 등 파트타임 근로자가 많은 업종이 연말 성수기로 근로수요가 많아지는 시기에 진입하여 즉각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
- 장기적으로는 후생연금 가입 조건 조정 등 연금제도 개혁과 병행하는 동시에 맞벌이가 늘어나는 사회적 환경 변화에 맞게 부양 방식을 포함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