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식에게 못되게 구는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있다. 어려움에 처한 가족 문제를 주제로 전문가와 비전문 연예인이 나와서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에 보면 그런 부모도 정말 있다.
그런데, 자기가 경영하는 회사가 잘못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놀랍게도 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많다.
변호사 출신으로 싱가포르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규식 선생이 쓴 『할 말 하는 주주』(2024.12.5. 발행)를 굳이 읽지 않아도, 단 몇 년만 한국에서 주식 투자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많아도 아주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절망하고 있다.
나도 지난 30년간 외신에서 한국 경제에 관해 기사를 써오면서 수없이 목격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보면서 더욱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이 문제를 들여다 볼 기회를 갖게 됐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몇 번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갖기도 했던 김규식 선생은 이 책에서 KT&G(과거 전매청, 담배인삼공사)에 관한 기가 막힌 이야기를 상세히 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2015년까지 변호사로 일하다가 2016년 투자업계로 전직했으며, 현재는 싱가포르에서 펀드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김규식 선생님은 2022년과 2023년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회장을 맡았고, 현재 에스엠엔터테인먼트와 파크시스템의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대부분 KT&G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을 소개하고 그것이 왜 관련 있는 몇몇 사람이 아니라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과 미래에 경제 활동을 할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감독 당국과 언론이 자기 맡은 일만 제대로 해도 이런 일을 최소한 줄이고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에는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주옥같으면서도 얼핏 너무도 당연한,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도 찾아보기 힘든 원칙을 강조하면서 그 반대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지배주주들은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일반 주주를 수탈해 자신들의 지분율을 늘린다"라면서 "...우아하게 포장하지만...강도 짓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수년간 몸으로 배운 것이 "대한민국에서 주식투자는 장기적 비전, 가치 평가보다는 수풀 뒤에 매복해 있는 지배주주의 독화살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한 핵심 스킬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해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 줄 얼른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도 그만큼 이 현실에 오래 노출된 탓이리라.
너무도 오래 들리는 말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표현이다. 한국 상장회사가 어느 나라의 회사보다 헐값에 주식시장에서 거래된다는 말로, 그 이유로 북한과의 대치 상황 등을 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회사의 이사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과 특히 사외이사가 제 기능을 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는 일반주주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버젓이 하고 일신의 영달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수상이 천명한 이른바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가 바뀌고, 그 결과 "우리나라 바로 옆에 나란히 앉은 열등생 짝꿍이었"던 일본이 "한 칸씩 앞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을, 한국은 맨 뒷자리를 지킨 채 태평히 지켜보았다"라면서 저자는 한탄한다.
워낙 유명해서 나를 만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귀한 지인인 저자가 집필한 훌륭한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참고로 이 책을 읽고 나서 급하게 찾아서 정리해 본 한국, 미국, 일본, 타이완의 실러 CAPE비율(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 추이를 서로 비교한 그림을 덧붙인다. 그림에서 보듯, 지난 10년 사이 한국 주가 가치는 고점에서 35% 낮고, 저점에서 18%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른 나라 성적과 비교하면 이것이 얼마나 한심한 상황인지 잘 알 수 있다.
《책 정보》
제목: 할 말 하는 주주 (주주 권리 탈환 전쟁, 그 한복판에서)
저자: 김규식
출판: 액티브
발행: 20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