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정책의 출구 전략의 시점을 명확히 하는 발언을 한 이후 미국 시장을 비롯해 아시아 금융시장, 그리고 이 시간 현재 초반 유럽시장까지 전세계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이제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된 만큼 자산의 재배치를 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버냉키는 할 말을 했고 투자자들은 그에 따라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 걱정하는 것은 과연 연준의 이번 결정이 얼마나 정확한 현상 판단에 기초한 것인가의 여부다. 만일 이번 결정이 잘못된 경기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전세계 경제는 다시 엄청난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연준이 과거에도 경기 회복 속도를 과대평가해 우왕좌왕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온다면 연준으로서는 새로운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할 수도 있다. 금리는 이미 제로에 도달한 지 오래다. 더구나 정책 실수에 따른 혼란을 수습하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큰 규모의 양적완화정책을 도입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재정 건전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고 또 정치권의 대응에 따라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논란의 소지는 크지만 지난 2009년 6월 한국은행 이성태 당시 총재는 기준금리를 사상최저인 2.0%로 동결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제 경기 하강이 멈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론 당장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신호는 주지 않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출구전략에 대한 청사진이 곧 마련될 것이라는 견해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9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의지를 피력했다.
2009년 9월 10일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는 "기준금리가 일부 인상되더라도 여전히 금융 완화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출구전략 시행이 임박한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2010년 상반기 까지는 출구전략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밝혀 깔끔하게 교통정리를 했다.
당시 거시경제 지표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기준으로 2/4분기에 2.5%, 3/4분기에 3.4%를 기록했다. 4/4분기에 성장률이 0.3%로 둔화됐지만 2010년 1분기에 다시 2.2%의 전분기대비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계신용은 계속 늘어났고 인플레이션은 바닥을 찍고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반대 속에 이 총재는 2010년 3월 말 퇴임할 때까지 출구전략을 시행하지 못했고 금리 인상은 그 해 7월부터 시작됐다.
필자는 당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해 어느 정도까지 올려놓았더라면 이후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었을 뿐 아니라 2012년 중반부터 경기가 급속히 냉각될 때 과감하게 금리를 다시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중수 총재가 결국 2010년에서 2011년 사이에 금리를 5차례 인상했지만 경기가 냉각되기 시작했을 때 금리 수준은 고작 3.25%였다.
결국 2012년 경기가 악화되는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정책 여력" 확보 및 가계부채 문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논쟁을 하며 시간을 끌었고 결국 2012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어렵게" 금리를 3차례 내렸다. 다분히 시기를 놓친 감이 없지 않다.
금리를 더 빨리 올리기 시작해 더 많이 인상했어야 한다는 필자의 견해가 틀릴 가능성은 꽤 높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버냉키 의장의 경기 판단과 그에 따른 출구전략 시행이 갖는 위험성을 새기며 앞으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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