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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참는 공무원, 시원한 애견카페

올해도 어김없이 무더운 여름이 다가왔다. 그러나 안전 우려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가 멈춰서고 정부는 대대적으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달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여름철 전력난을 우려하며 "청와대가 솔선수범해서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 달라"고 주문했다. 

자신은 에어컨을 전혀 틀지 않고 지내고 있다며 은근히 압박하기도 했다. 그 이후 청와대는 물론 공공기관은 더위를 참고 지낸다. 그러나 대통령과 공무원들이 더위를 참고 일한다고 해서 여기에 감동을 받아 함께 전기를 절약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요금을 내고 쓰는데 무슨 상관이랴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또 영업상 및 여러 가지 이유로 적당히 시원한 기온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는 병원 같은 시설도 있고, 애견카페 같은 곳도 엄연히 영업상의 이유로 에어컨을 끌 수 없다. 물론 사용한 양 만큼 요금을 내므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들이 전기를 아낀 덕분에 애견센터의 강아지들이 맘껏 시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딱히 보기 좋은 상황도 아닐 뿐더러, 공무원들은 무더위 속에서 일을 하느라 생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들은 국가적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데 써야 할 기운을 더위와 싸우는 데 탕진하고 있는 것이다. 시쳇말로 죽 쑤어 개 주는 꼴이다. 그렇다고 공무원들마저 전기를 원하는 만큼 쓴다면 아마 전기 부족 사태로 공장이나 병원이 큰 문제에 부닥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요 국가들과 비교하면 전기료가 낮은 편이고 더구나 생산원가에 지속적으로 못미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전기 사용요금에 일종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현재 상황에서는 전기를 과잉소비하는 사용자가 더 많은 보조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낮은 에너지 가격 정책이 오래 지속되자 한국은 상당한 정도로 에너지 과소비를 하고 있다. 

또 에너지 가격을 생산원가보다 낮게 유지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원가가 오르면 정부는 실제 가격과의 격차를 무작정 크게 벌일 수 없으므로 요금을 인상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요금이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된다. 나아가 에너지 가격 현실화는 산업계의 에너지 효율 개선 노력을 더욱 촉진하고 그렇게 개발된 에너지 절약 기술은 상품화까지 가능할 것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에너지 공기업이 구조조정 등 원가절감 노력을 더 기울인 다음 그 때도 원가와 요금 사이에 격차가 있을 경우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당한 얘기다. 하지만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은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에너지 공기업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고, 에너지 가격 문제 때문에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월급쟁이들에게 제공돼 온 세금 혜택을 축소 내지 폐지하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세수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데다가 복지 지출은 꾸준히 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세원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은 결국 재정 부담 축소, 경제 전체의 에너지 효율 증진, 에너지 과소비자들에게 돌아가던 부당한 혜택의 축소 등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 두뇌들인 공무원들이 더위와 싸우며 힘을 소진하는 대신 시원한 공간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해 국가에 공헌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물론 한꺼번에 에너지 가격 조정을 이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현실화 계획을 명시적이고 정교하게 수립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거창한 일자리 대책 못지 않게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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