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2

컨센서스

(※ 8월15일 페이스북에 남겼던 글을 보관용으로 이 곳에 옮겨 놓습니다)

컨센서스 --

"법 대로 하자"는 말은 오래 생각해 보지 않아도 썩 듣기 좋은 아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은 상호 이해 혹은 합의, 즉 컨센서스에 따르면 가장 좋고 서로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또는 가장 손해가 적은)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컨센서스의 사전적 의미는 한 집단 전체가 도출한 하나의 견해 혹은 입장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컨센서스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되니 세상 일은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 사이에는 사실 두 명이 됐든 2천 명이 됐든 이렇게 컨센서스가 도출되고 그 결과 자신이 개인적으로 합의하지 않더라도 이미 모두가 합의한 컨센서스에 흔쾌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는 상황은 생각 만큼 흔하지 않다. 서로 죽도록 사랑해 결혼한 뒤 수십 년을 살아온 끝에 부부가 결국 둘 사이에 불화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해 자신들의 운명을 판사의 결정에 맡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을 법정에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나라마다 주요 사안에 대해 컨센서를 슬기롭게 도출해 내고 또 일단 컨센서스가 도출되면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뜻을 굽히고 그 컨센서스를 받아들이는 일에 뛰어난 국가가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그런 일을 잘 못하는 나라도 많다. 나는 대한민국의 경우 이 부문에 있어서 만큼은 "잘 못하는" 나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컨센서스보다는 판사의 판결이 문제를 해결하는 빈도가 높아져 왔다. 그러다 보니 판사가 마치 현자(賢者)라도 되는 양 정의의 심판자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법정 다툼으로 가는 많은 일은 그 전에 당사자들 사이에 컨센서스를 도출해 원만하게 해결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따라서 법정 다툼까지 갔다면 승소를 하건 패소를 하건 이미 모두 패배자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판사들은 기분이 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판사는 수많은 직업 중 하나로 현행 법의 해석을 하는 권한을 가진 것 뿐이다. 우리 사회가 유독 컨센서스 도출에 미숙한 것은 역시 교육의 실패가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차 책임은 가정교육의 실패에 있고 취학을 해서 20여 년에 달하는 공식 교육 과정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차적 문제라고 본다.

우리 주변에서도 어떤 단체에서 컨센서스를 도출하려 토론을 진행한 끝에 자율적으로 합의 도출이 안 돼 결국 다수결로 결정하려 시도하지만 소수 의견을 가진 소속원들이 단순다수결로 해결하는 것이 부당하다며(혹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농성을 벌이다가 결국 법정으로 결정을 끌고 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법원은 대부분 애초 다수결로 결정을 내렸을 때와 유사한 취지의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3심제 아래 대법원까지 소송은 계속되고 어떤 경우는 대법원 판결도 받아들이지 않아 헌법재판소까지 일을 끌고 간다.

이렇게 되다 보니 대한민국에서는 사소한 것도 법이나 규정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대세가 되었고 어떤 규정은 정말 우리가 인간이기를 정녕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내용도 많다. 지하철에서 노약자 지정석을 만들어 놓으니 임신부들이 부당하다고 해서 임신부들도 대상자에 포함시키도록 규정을 바꿨다. 그렇지만 노약자/임신부가 아니고도 그 자리를 먼저 차지해야 할 사람은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결국 컨센서스에 실패함으로써 규정(법)을 만들어 놓고 우리는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 꼴을 매일 보고 있는 것이다.

규정(법)이 너무 많고 당연히 애매하다 보니 비리가 끼여드는 것이고 오히려 다툼은 많아져 결국 법정까지 가는 일도 많다. 컨센서스를 도출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일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그 순간부터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우리 자식들 세대만큼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무조건 법정으로 달려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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