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블로그 검색◀

디플레이션 위험과 한국은행의 "소통" 능력

(※ 필자의 사견입니다.)

한국에서는 오랜 동안 디플레이션 위험보다는 인플레이션 안정이 더 강조돼 왔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의례 강조하는 것도 일자리 창출과 함께 물가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생각보다 오랜 기간 동안 약세를 보이고 있고 국내 소비 및 투자 수요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원화환율도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어 인플레이션율은 십수 년 만에 최저치인 1% 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웃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에 있어 불안정한 인플레이션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이 디플레이션이다. 물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다고 해서 곧바로 그 나라가 디플레이션에 빠졌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정의가 있으나 대개 "경기가 하강하면서 물가도 하락하는 경제현상"을 디플레이션이라고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디플레이션을 "2년 정도 물가하락이 계속돼 경기가 침체되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수요부진 또는 광범위한 공급초과로 디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게 되면 기업의 수익이 줄어들면서 경제가 전반적으로 후퇴하는 불황을 맞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주로 초과 수요에 의해 발생한다면 디플레이션은 주로 초과 공급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즉 소비자의 구매력을 넘어서 공급이 이루어질 경우 초과공급이 생기면서 가격이 내려간다. 이렇게 되면 여타 자산가격도 하락하고 더구나 임금이 하락하면서 가계소득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경우 아직 디플레이션 위험이 임박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생산성은 정체되고 고급 일자리 창출은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제조업 전체에 설비 능력은 잉여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높은 가계부채와 자산가격 약세,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상황 등 때문에 소비지출을 억제하고 있다. 따라서 디플레이션 위험을 애초부터 배제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도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적정선으로 생각되는 수준으로 설정하고 실제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근접하도록 경제를 관리해 나가고 있다. 즉,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보다 높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낮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그런데  여러 정황상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의 지나친 둔화를 막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 중앙은행의 "소통"의 진정한 의미

사실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한국은행이 향후 인플레이션을 전망하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이나 경상수지 등 다른 거시경제지표와 함께 인플레이션율 전망을 정기적으로 발표한다. 이 발표는 다시 각 경제주체와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물가상승률 전망은 다른 어느 기관의 전망보다 중요하고 또 그에 따라 경제정책도 수립ㆍ집행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한국은행의 2013년 연간 인플레이션율 전망이 제시되고 수정된 것만 봐도 놀라울 정도다. 2011년 12월 한국은행은 2013년 인플레이션을 3.2%로 전망했으나 이후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이를 하향수정해 올해 7월 전망시에는 이를 1.7%로 낮춰 잡았다. 이렇게 하는 동안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모두 세 차례 내렸으나 여전히 인플레이션은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으며 경제의 회복세는 더디기만 하다.

물론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만 보고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섯 번이나, 그것도 큰 폭으로 인플레이션율 전망을 하향조정했고 조정된 인플레이션율이 한국은행의 목표 범위 하단 혹은 그 아래로 내려간 지 오래 됐지만 이에 대한 한국은행의 정책적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만일 민간기업에서 이토록 중요한 사안에 대한 전망을 번번이 부실하게 해서 손해를 끼쳤다면 기업의 주가는 하락하고 경영진은 자리를 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데 급급할 뿐 다른 대안은 없는 듯하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변경하고 신용 공급을 변경하는 것 이외에도 시장에 여러 가지 신호를 주어 경제주체가 다가오는 경제상황에 맞춰 의사결정을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소통의 목적으로 삼는다. 단순히 보도자료를 더 명쾌하게 작성하고 경제지표 설명을 더 논리적으로 한다고 해서 소통을 강화했다고 본다면 이는 소통의 의미를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2013년 성장률 및 인플레이션 전망 수정 현황과 소비자들의 기대인플레이션율 변화 추이. 한국은행은 2011년 12월 처음 2013년 인플레이션율 전망치를 제시한 이래 모두 여섯 차례 대폭 이를 하향조정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정 추이와 인플레이션율 추이. 한국은행은 2012년 초반부터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금리보다 낮아졌지만 기준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모습을 취했다.)



(생산자물가지수와 수출입물가지수 증가율, 그리고 브레이크이븐레이트 추이. 인플레이션율이 현재의 낮은 상황에서 반등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7일간 많이 본 글◀

태그

국제 경제일반 경제정책 경제지표 금융시장 기타 한국경제 *논평 보고서 산업 중국경제 fb KoreaViews *스크랩 부동산 책소개 트럼포노믹스 일본경제 뉴스레터 tech 미국경제 통화정책 공유 무역분쟁 아베노믹스 가계부채 블록체인 가상화폐 한국은행 환율 원자재 국제금융센터 외교 AI 암호화페 북한 외환 중국 반도체 인공지능 미국 인구 한은 논평 에너지 정치 증시 하이투자증권 코로나 금리 자본시장연구원 연준 주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출 중동 산업연구원 생성형AI 채권 한국금융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일본 일본은행 BOJ 자동차 칼럼 ICO 국회입법조사처 한국 KIEP 미중관계 삼성증권 세계경제 신한투자증권 에너지경제연구원 우크라이나 인플레이션 전기차 지정학 IBK투자증권 TheKoreaHerald 분쟁 브렉시트 현대경제연구원 BIS CRE IT KB경영연구소 KB증권 KIET NBER OECD 대신증권 무역 미국대선 배터리 상업용부동산 수소산업 원유 유럽 유진투자증권 자본시장 저출산 전쟁 ECB EU IBK기업은행 IEA LG경영연구원 PF PIIE 경제학 공급망 관광 광물 규제 기후변화 로봇 로봇산업 보험연구원 비트코인 생산성 선거 신용등급 신흥국 아르헨티나 연금 원자력 유럽경제 유안타증권 유춘식 이차전지 자연이자율 중앙은행 키움증권 타이완 터키 패권경쟁 한국무역협회 혁신 환경 AI반도체 Bernanke CBDC CEPR DRAM ESG HBM IPEF IRA ITIF KDB미래전략연구소 KISTEP KOTRA MBC라디오 NIA NIPA NYSBA ODA RSU SNS Z세대 iM증권 경제안보외교센터 경제특구 고용 골드만삭스 공급위기 광주형일자리 교역 구조조정 국민연금 국제금융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국제유가 국회미래연구원 국회예산정책처 넷제로 논문 대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독일 동북아금융허브 디지털트윈 러시아 로슈 로이터통신 말레이시아 머스크 물류 물적분할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방위산업 버냉키 법조 복수상장 부실기업 블룸버그 사회 삼프로TV 석유화학 소고 소비 소통 수출입 스테이블코인 스티글리츠 스페이스X 신한금융투자증권 싱가포르 씨티그룹 아이엠증권 아프리카 액티브시니어 양도제한조건부주식 예금보험공사 외국인투자 원전 위안 유럽연합 유로 은행 이승만 인도 인도네시아 인재 자산관리서비스 자산운용업 잘파세대 재정건전성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주간프리뷰 중립금리 참고자료 철강 코리아디스카운트 코스피 테슬라 통계 통화스왑 통화신용정책보고서 트럼프 팬데믹 프랑스 플라자합의 피치 하나증권 하마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해리스 해외경제연구소 홍콩 횡재세 휴머노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