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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수순으로 치닫고 있는 브레튼우즈 체제" - 엘 에리안 기고문

(※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개혁 요구가 기득권을 가진 미국과 유럽의 협력 거부로 번번이 무산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명을 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인 설명을 펼치고 있는 모하메드 엘 에리안 전 핌코 CEO의 글을 소개한다. 엘 에리안은 알리안츠의 수석 경제 고문이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세계개발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이 글의 원문 제목은  The Fragmentation of Bretton Woods(브레튼우즈 체제의 해체)』이며 원문 전문은 여기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필자 소개는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지난 1944년 미국 뉴햄프셔 브레튼우즈에서 44개 연합국 지도자들이 모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 및 통화 질서를 위한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이후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그 7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여전히 강력한 다자 기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를 대변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대한 지지도는 설립 이래 최악의 수준으로 추락했으며, 따라서 세계경제가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동시에 지정학적 불안을 증폭시키는 결과까지 낳고 있다.

브레튼우즈 회의 개최 당시만 해도 참석자들은 IMF와 세계은행이 세계 안정에 필수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이 두 기구는 개별 국가들이 근시안적인 정책을 채택해 다른 나라의 경제 발전에 피해를 주고 보복 행위를 촉발해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 전체에 피래를 가져오는 사태를 미연에 억제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많은 주요국이 도입했던 이른바 '인근궁핍화(beggar-they-neighbor)' 정책을 2차대전 후에 또 도입하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는 것이 이들 두 기구의 설립 취지에 포함된 것이다.

더구나 정책 공조 강화 및 금융 자원 공동 조달 등을 촉진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그야말로 국제협력의 효율성을 증진하는 데 이바지했다. 일시적 어려움에 처하거나 개발금융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에 대한 집단보험을 제공함으로써 이들 두 기구는 국제적 안정을 강화한 역할도 했다.

지금까지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입지 않은 나라를 꼽으라면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들 두 기구를 개혁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하자고 하면 많은 나라들이 선뜻 앞장서려 하지 않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고의성은 없었겠지만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들은 궁극적으로는 IMF와 세계은행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 정책들을 취하기까지 했다.

최근 국내정치적 압력에 따라 서방국 정부들은 날이 갈수록 고립주의적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및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이른바 BRICS 국가들은 단기 유동성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외환보유고를 구축하고 자체적인 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함으로써 IMF와 세계은행에 직접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지역적 기반을 두고 IMF와 세계은행을 보조하기 위한 기능을 지니고 있는 다른 기존 기구들과는 달리 BRICS의 신개발은행과 비상준비금협약은 문화·지리·역사적 연계에 기초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이들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신뢰도 및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는 시대착오적 특권에 미국과 유럽이 집착하고 있는 현상에 반발해 새로운 기구를 만들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럽과 미국이 빈번하게 변화를 약속했으면서도 IMF와 세계은행 수장 자리를 자신들이 독차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국적별 인사제도 철폐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지역 및 국가별 대표성 재조정을 미세한 정도만 하려 해도 유럽과 미국이 협조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서유럽은 엄청나게 과도한 대표권을 누리고 있으며 신흥국들은 세계 시스템적 중요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발언권이 미약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 유럽 지도자들은 IMF를 협박하다시피 해서 대출 규정을 스스로 위반하도록 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고 보였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브레튼우즈 체제를 출범시키는 주역이었던 국가들이 오늘날 그 체제의 정통성, 영향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 존재 이유 자체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능력주의, 경쟁, 그리고 투명성을 부르짖는 바로 그 국가들에게 불공정한 혜택을 제공해 주고 있는 국제기구를 신흥국들이 지지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게 됐다. 이것이 바로 거대 신흥국들이 기존 국제기구 밖에서 자신들 스스로의 집단적 경제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이유인 것이다.

한편, 국제통화질서에 또 하나 도전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바로 양자간 지불 협정의 확산이다. 이들 양자 협정은 더 효율적이고 포괄적인 구조를 회피함으로써 다자주의 원칙을 약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양자 협정은 브레튼우즈 협정문에 의거한 일부 약속과 배치되는 것도 있다.

이렇게 브레튼우즈 체제의 해체가 진행됨에 따라 빚어지는 결과는 단순히 경제 및 금융 차원의 기회 상실을 넘어서 정치적 협력 약화, 상호 의존 축소,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로 이어지게 된다. 당장 우크라이나나 이라크에서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사정만 들여다 보아도 위기상황에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다자간 협력의 틀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겨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문제점은 이 정도로 해 두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간단히 말하자면, IMF와 세계은행은 조속히 자체 개혁에 나서야 한다.

설립 당시인 1944년의 사고방식을 뛰어 넘어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고 미래의 기회를 강화할 수 있는 식으로 이들 브레튼우즈 체제 기구를 변화시키는 일은 몇 가지 핵심 조치만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하물며 기술적으로 아주 복잡한 것도 아니다.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국적별 채용기준 폐지, 유럽 비중 축소와 신흥국 비중 확대를 위한 국가별 비중 조정, 그리고 경제감독 및 여신 공여시 형평성 증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개혁 조치를 시행하는 데 극복해야 할 것은 물론 정치적 저항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국가들의 경우 국내정치적으로 양극화 현상에 직면해 있어 경제적 국제다자주의를 공개리에 지지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어 정치적 저항 극복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아주 극소수의 개혁 조치를 도입하려 했는데도 미국 의회가 이를 반복적으로 거부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구나 미국 의회가 거부한 조치들은 이미 2010-2012년 사이에 다른 대다수 국가에서 승인했고 미국에 그다지 큰 금융 부담을 지우는 것도 아니며 미국의 투표권이나 영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른바 '계몽된 이기심(enlightened self-interest)'를 통해 이러한 정치적 장애를 뛰어넘어야 한다. 세계 지도자들이 개혁에 대한 거스를 수 없는 요구를 거부할 수록 세계 경제 및 금융의 미래 전망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세계 안보 상황의 악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mohamed-a--el-erian-says-that-refusal-to-reform-the-imf-and-the-world-bank-is-making-the-world-more-dange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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