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금융경제연구소 곽영훈 연구위원이 작성한 『내수확대로 원高 압력을 해소할 필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소개한다. 결국은 원화 절상으로 인해 한국의 국제적 구매력이 강화됐는데 내수소비용 수입 및 전반적 내수 소비는 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구매력과 소비 사이의 고리가 끊어진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에 가까워지면서 2000년대 평균 실질실효환율(BIS시산)보다 10% 이상의 원高(=원화강세) 상태가 되었다. 수출기업은 물론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특히 ‘원高’와 ‘내수부진’이 상호작용을 통해 심화됨으로써 불황이 길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즉 내수침체로 증가한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강세의 원인이 되고, 역으로 원화강세가 기업수익을 악화시켜 내수부진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원화절상이 오히려 경상수지흑자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큰 경우에는 내수확대를 통한 흑자폭 감축과 원高압력 해소가 바람직해 보인다.
※ 원/달러 환율에 대한 대내외의 시각차 존재
원/달러 환율 수준에 대한 국내·외의 시각차가 크다. IMF는 한국의 경상수지흑자 규모가 GDP의 6.1%로 적정치 2%를 크게 상회하므로 원화절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상원 금융위원회도 7월 29일 ‘한·미 FTA 2년의 교훈’ 청문회에서 우리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원고’를 지연시켰다고 지적하였다. 반면 원화절상에 대한 국내 기업과 정책당국의 경계심은 결코 가볍지 않다. 원/달러 환율 1,000원은 2000년 이후 평균 실질실효환율(BIS시산)보다 10% 정도 원고 상태이며, 무역금융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의 기업들이 손실을 감수해야 수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시각차에 따라 당연히 대응방식도 달라진다. 연간 80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라는 결과만 보면 이를 적정수준으로 끌어내릴 때까지 원화절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불황형 흑자로 이해한다면 원화절상보다는 내수회복과 이를 통한 수입증가가 더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원화강세시 경상수지흑자가 축소되는 자동조절 메커니즘 이완
국내 수출입 및 경제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면 원화절상이 더 진행되더라도 흑자폭이 그다지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원화강세시 경상수지흑자폭이 축소되는 자동조절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출기업들의 가격결정력이 약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과거에는 원화강세가 진행될 때, 기업들은 수출물량이 감소하더라도 달러표시 수출가격을 인상함으로써 환율변동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해외 수입선에 전가해왔다. 그러나 2012년 초부터는 달러약세에도 불구하고 달러표시 수출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수출기업들이 수출물량 유지를 위해 수출단가 하락과 이에 따르는 수익성 악화를 감내하고 있다.
더욱이 원화표시 수입단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내수침체로 인해 수입이 증가하지 않는 것도 경상수지 흑자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수출입 구조의 변화 때문에 원화강세를 유도하더라도 경상수지 흑자폭 조절에 그다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원고불황’으로 인한 저성장·저물가 현상의 장기화 가능성 부각
수출입에 대한 환율변동의 영향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원화강세와 내수침체의 악순환이 진행되는 소위 ‘원고불황’의 발생 가능성이 커졌다. 원고불황이란 단순히 원화강세로 인해 수출이 부진한 ‘상태’가 아니라 국내경제의 펀더멘탈과 유리된 채 결정된 과도한 원화강세가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는 ‘과정’이다. 즉 내수침체가 경상수지 흑자를 확대시켜 이것이 원고 압력으로 작용하고, 원고가 기업수익을 악화시켜 다시 내수부진을 장기화시키는 악순환이 ‘원고불황’이다.
현재의 원화환율 수준과 절상속도는 원고불황의 우려를 갖기에 충분하다. 원/달러 환율이 경상수지 흑자의 감소는커녕 내수침체를 심화시킬 위험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아래로 급격하게 하락하면 수출경쟁력마저 약화되면서 성장동력 자체가 저하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고용침체, 산업간 및 기업간 경기양극화 심화 등 질적인 퇴보까지 겹쳐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장기화될 수 있다. 과거 일본이 과도한 엔고로 인해 경기가 급락하고, 그 과정에서 정책실패까지 겹치면서 버블의 형성·붕괴가 발생하여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 과도한 원화강세의 진행을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대응이 필요
향후 점진적인 원화강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누적은 물론 이미 원화가 준안전통화로 여겨지는 등 위상이 제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원화강세와 이에 따른 원고불황의 발생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구제적으로 말하자면 ‘원고’보다는 ‘원고불황’을 제어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외환정책 뿐만 아니라 내수활성화 등 복합적인 정책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경상수지흑자 추세에 따라 빠른 원화강세를 용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이 불가피하다. 구두개입은 물론 스무딩 오퍼레이션 등 외환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을 동원해 급격한 원화절상을 억제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 해외진출 및 해외투자 활성화, 위안화 등 결제통화의 다양화를 통한 달러의 영향력 약화를 모색하는 등 외환시장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구조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국내경제가 원고불황의 가능성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외환정책뿐만 아니라 내수회복 등 간접적인 정책대응도 필요하다. 내수증대로 수입을 늘려 원화강세 압력을 완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수활성화는 목표이면서도 동시에 수단이 되는 셈이다. 더욱이 원고와 경상수지흑자가 공존하는 현재의 상황이 장기침체의 ‘전단계’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원화강세가 진행되면 본격적인 수출둔화와 성장동력 부재로 인한 저성장이 나타날 수 있다. 내수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들이 원고압력을 약화시켜 이러한 사태를 방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정책타이밍도 중요하다. 원고불황과 디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정확히 이해해야 과감한 정책대응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수출기업의 해외진출이 늘어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현저히 약화되었고, 원화강세가 물가하락과 원화구매력 증대를 통해 후생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원화강세를 억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수출기업들이 수출단가 인상을 포기하고, 수입단가 하락에도 수입이 늘지 않는다면 후생이 증가하기 어렵다. 또한 원고에 의한 물가하락도 저성장·저물가 국면에서는 반갑지 않다.
이론상의 원고 혜택이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국면이다. 물론 과도한 금융완화나 내수확대정책이 버블생성과 금융위기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정책 실기는 차후 더 강한 정책대응을 요구한다는 것이 일본 장기불황의 교훈이다. 또한 글로벌 경제 및 정책 흐름에 상반되는 정책 방향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원/달러 환율 1,000원 하향돌파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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