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천500억불 (약 16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Bridgewater Associates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가 경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30분짜리 동영상이 다시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네이버 블로그 『새나의 창고』 운영자가 올린 글과 동영상 링크를 공유한다.
'헤지펀드의 왕' 레이 달리오가 쉽게 풀어나간 경제(경기변동) 설명 동영상을 보았다. 생각할 게 많다.
1) 신용(credit)은 필요악이다. 신용이 없으면 경제 성장이 엄청나게 어려워지지만 (오직 생산성 증가에 의존해야 하니까) 바로 이 신용 때문에 그 무서운 경기 변동이 생기는 것이다.
가계신용이 없으면 집장사, 차장사 모두 엄청나게 어려워질 것이다. 다 저축한 돈으로 사야 한다고? 뭐 거기까지는 인정해 두자. 신용이 없으면 창업도 전부 자기 돈으로 해야 한다. 개인 자영업이야 그렇다 치고, 법인기업(주식회사는 물론 협동조합도!)의 경우 신용이 없으면 요즘 욕 바가지로 먹는 '사내 유보금' 말고는 자산을 확대할 방법이 없다.
신용이 금리의 함수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금리의 가격 기능을 잊어버리고 저금리(아니, 사실상 무금리!)를 예찬한 정태인 님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다. 무리한 저금리는 신용의 과도한 팽창을 낳아 신용 사이클 및 경기 변동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신용은 거시경제학의 커다란 '펑크'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 시절 생산성의 노이즈, 심지어 태양 흑점 때문에 경기 변동이 생긴다는 Real Business Cycle 이론을 배우면서 황당해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나마 경제학자 중 신용의 경기 변동 주도를 강조했던 이가 바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재조명된 하이먼 민스키이다.
2) 과연 이 동영상에 나오듯 단기와 장기 신용 사이클이 요즘 구분이 되는가?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산업화된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이 2-3% 아래가 된 현 상태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으로 설명되는 전통적 단기 신용 사이클 모델이 설득력이 있느냐는 말이다. 한국은행을 포함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개념을 잊은 지 이미 십수년이 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장기 신용 사이클. 이것이야말로 본질적인 신용 사이클이요 경기 변동의 진정한 원인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70-100년 간격으로 일어나는가? 정보가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가지가지 파생상품이 발달한 현재의 금융 시장에서는 장기 신용 사이클의 주기도 과거보다 훨씬 짧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모두 엄청나게 '세계화'된 현재는 각 나라마다 다른 장기 신용 사이클이 세계적으로는 거의 단기 사이클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미국의 신용 사이클 절정이 2008년이었다면, 중국의 신용 사이클 절정은 지금으로 추정된다.
3) 그리고 디레버리징의 네 가지 수단. 긴축(austerity)과 부채 조정 (debt restructuring)이야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내 평소 지론이 '긴축에 의한 자발적인 부채 상환으로는 절대로 디레버리징을 할 수 없다' '디레버리징은 결국 디폴트와 채무 재조정에 의해 현실화된다' 이니까. 반면 부의 재분배(부자에서 가난한 사람으로의)와 중앙은행의 통화증발(money printing. 결국 QE를 뜻함)에는 문제가 꽤 많다. 일단,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는 불평등 완화 방향으로의 부의 재분배가 분명 일어났지만 2008년부터 현재까지는 그런 증거가 없다. 오히려 중앙은행의 통화증발이 금융자산 가격의 상승을 가져와 가난한 사람에서 부자로의 부의 재분배가 발생했다는 얘기도 있다.
레이 달리오는 이러한 비난을 의식한 듯 '중앙은행의 통화증발은 적자재정을 통한 정부의 복지지출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 선진국 중앙은행의 QE가 적자재정을 통한 복지증가로 자동적으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시행된 Fed의 QE3나 BoJ의 QQE, ECB의 QE는 재정적자 증가를 수반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레이 달리오가 주장하는 '아름다운 디레버리징'의 핵심 조건이 바로 부의 재분배를 통한 '보통 사람들'의 소득 증대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 조건이 충족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고는 하지만,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아름다운 디레버리징'이 일어날 때는 부채 증가 속도보다 소득 증가 속도가 빠르다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가계 소득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 (지난 2분기 말 기준 가계 부채 증가 속도는 전년동기 대비 약 9%. 가계 명목 소득 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느릴 것이 분명하다.) 소비가 부진한데도 말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 경제 정책 당국의 최대 고민이다.
사실상 모든 디레버리징은 고통스럽지만, 신용(부채)이 존재하는 한 사이클은 존재하고 신용 사이클의 필수 조건이 바로 이 디레버리징인 것이다. 그래서 신용은 필요악이다.
중국을 둘러싼 고민의 핵심은, 중국도 이 고통스런 디레버리징이 필수로 보인다는 점이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기에, 레이 달리오는 요즘 미국에서 QE4를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중국이 어떤 정책을 보여 주느냐이겠지만. 지준율 50bp 인하 가지고는 택도 없어 보인다.
[출처] Ray Dalio의 How the Economic Machine Works 동영상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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