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잡지 《신동아(新東亞)》가 11월호에 창간 84주년 특별기획으로 [2·0·4·5 광복 100년 대한민국] 시리즈를 발간했다. 20~30대 1,6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설문조사 자체는 놀랄만한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례로 '나는 한국이 싫다'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라는 것부터 정교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매우 동의한다는 사람은 7%였고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이 5.5%로 이 문항에 대한 응답자의 답은 절반으로 나뉘었다.
대신 이번 시리즈 기사 가운데 경제부총리를 지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의 기고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로필이 화려해 어떻게 소개해야 옳을지 모를 정도지만 그의 『경제학원론』 으로 공부한 사람만 해도 수백만 명이 될 것이다.
기고문에서 특히 조순 교수의 다음 글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의 달성, 1980년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민주화의 성취,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상징하는 선진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며 이 3가지 업적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이 3가지 업적은 이제 초기의 빛을 많이 잃었다. 산업화는 답보 상태에 있고, 민주주의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그리고 선진화는 국내총생산(GDP)만으론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민주주의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말은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그렇다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여기 나열한 3가지 업적은 대한민국이 어디에서든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3가지 항목 모두에 있어서 갑자기 손을 놓은 형국이다. 조순 교수는 이에 대해 "대한민국은 어딜 봐도 제대로 된 데가 없다"며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정치의 몰염치와 무소신, 국민의 무질서와 패륜"을 한탄하고 있다. 나는 또한 "대한민국의 뉴노멀 시대를 만드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은 경제보다는 교육과 정치"라고 한 부분에도 동의한다.
이와 관련해 몇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얼마 전 동문회 초청 행사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 말미에 질문 시간에 동기동창생이 연사가 쩔쩔 매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질문을 했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텐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훌륭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에 대한 답으로 "그보다 왜 성장을 해야 하는지부터 물어볼 때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것이 어떤 성장인지를 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임기응변식으로 한 말이지만 정말 우리는 성장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같다. 재임 기간 중 성장률이 전임 대통령보다 높으냐 낮으냐를 따지는 기사도 나온다. 성장률 수치 자체가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기자들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발언은 모든 언론 매체가 중요한 비중으로 다룬다. 정작 독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신경을 안쓴다. 그런데 정부는 해명자료를 낸다. 역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매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자원을 들여 실시하는 국정감사 도중 발견된 많은 문제점에 대해 이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수정하도록 하는 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당은 선거공학에만 매달린다. 언론은 언론사 자체의 이익에 더 관심이 있다. 10초만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무슨 무슨 경고"는 대서특필하지만 중도의 합리적 학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별 일도 아니고 확인되지도 않은 주장을 담은 국회의원의 보도자료는 크게 보도하고 국회의원 비서들은 그 기사를 복사해서 보관한다.
아래 그림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PPP 기준 미국 대비 비율)이 세계 유례없는 속도로 개선된 것을 나타낸다. 누가 뭐래도 엄청난 성과다. 당분간 이 추세는 지속돼 한국은 조만간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IMF는 전망하고 있다. 경제 지표가 이렇게 놀랄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기 못한다.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이제 소득 증가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이제 경제성장률을 놓아 주자. 성장을 위해 소흘히 한 많은 더 소중한 것을 챙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