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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부동산을 싸게 사기로 했다" 무도스런 저자의 고순도 작품
"무한도전" TV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됐을 때를 떠올려 본다. 연예인이라는 점만 빼면 신체 조건이나 다른 기준으로 보더라도 뭐 보통 이상이라고 하기 힘든 출연자들이 분명히 무모해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꼼수를 쓰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 높은 인기를 끌었다. 대부분 목표 달성에 실패했던 것으로도 기억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무도"라는 짧은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린다.
김효진 이코노미스트의 책 『나는 부동산을 싸게 사기로 했다』는 책을 읽고 난 뒤 소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고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문득 이 TV 프로그램이 떠오른 것은 그만큼 이 책이 시중에 유행하는 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면서도 의외로 담담한 자세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처럼 책을 아주 느리게 읽는 사람도 집중해서 읽으면 2~3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고 간결하다. 심하게 말하면 말빠른 이코노미스트의 프리젠테이션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물론 거창한 직책 이외에 신선한 내용도 없는 그런 프리젠테이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품질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해야겠다.
그럴 정도로 이 책은 "도입 → 전개 → 결말"이라는 흔한 구성을 무시하고 매 페이지마다 고급 정보로 가득 채워 넣고 있다. 당연히 이 글에서는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할 수 없다. 다만 막연히 공포스런 표현을 동원해 마치 협박하듯 자신의 논지를 강요하는 책을 보고 나서도 고개를 갸우뚱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무도"에 관한 얘기로 시작한 것은 저자가 그토록 무모해 보일 정도로 순수한 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 월급쟁이들이 절대 부동산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비관적인 사람"이라고 책을 시작한 저자는 정신없이 사는 사이 "주변을 돌아보니 같이 전세로 시작했던 동료들은 이미 집을 샀더라. 배 아프진 않았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실토한다.
이코노미스트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저자가 이런 감정을 고백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하는 것부터 저자가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전 재산을 모두 털어 집을 샀는데 집값이 빠져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분석을 담아 보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론은 조금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 책의 두 가지 큰 결론을 소개한다. 첫째, 살 것이나 안 살 것이냐 사이에 선택을 하라면 "집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럼 지금 당장 살 것이냐고 따진다면 "집은 쌀 때 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결론을 미리 제시하고 저자는 빼곡히 국내외 데이터를 제시한다.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저자가 모든 설명을 데이터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정한 판단을 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무기가 필요하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내가 장착한 무기는 '데이터'다.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편견이 없으며 나보다 훨씬 객관적이다"
이 말은 저자와 이 책의 9할 이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과 관련해서는 세상 누구보다 잘 안다는 위험한 착각을 하기 마련이다. 어느 유명인이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생각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내가 해 본" 것은 지금의 비슷해 보이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차라리 안해 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옳을 때가 더 많다.
막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보통 저지르는 실수는 주변 "선배"들의 말에 너무 휘둘린다는 점이다. 대부분 선배들은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며 "기선을 제압하라"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충고를 한다. 하지만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문구를 쓰는 사람들 말은 무시하면 대충 맞다. 물론 데이터나 다른 근거를 함께 제시하는 사람들은 예외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도 1988년 결혼해서 2006년 현재 주거지에 정착하기 이전까지 이사한 횟수만 대략 15회 정도 된다. 그 가운데 주택을 사고 판 것은 3회 정도가 된다. 전세와 월세, 반전세 등 모든 형태의 계약을 해봤다. 그야 말로 "해 봐서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경험보다는 데이터를 믿는다. 내가 경험한 것은 매 순간 "과거"의 "특정한" 사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애써 TV 프로그램을 들먹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 준 가장 무모한 행동은 자신이 언제 집을 살 것인지 공개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을 전후해서 집주인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은 망한다"는 종류의 협박을 정말 망할 때까지 할 것같은 종류의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면서 분명 무모한 저자의 솔직함이다.
대단한 책이다.
(※ 참고로 2014년에 내 블로그에 썼던 글도 살짝 소개하고자 한다 ▶ (斷想) 주택시장 논의를 대하는 한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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