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30

(보고서) 이미 디플레이션에 빠진 한국

(※ 한국투자증권 보고서 주요 내용을 공유한다.)

1. 대내외 과도한 통화량 긴축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충격

한국은행의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대한 비관론은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최근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아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정책은 기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이미 너무 늦거나 내용도 신선도가 떨어진다.

이처럼 정책효과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이유는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과거 인플레이션 시대 경제정책과 디플레이션 하에서 경제정책은 엄연히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지금 국내에서 거시정책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경제학을 공부할 때는 인플레이션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미국의 연준이나 독일의 분데스방크가 그토록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이유도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중앙은행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인플레이션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일본만의 특수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디플레이션이 어느덧 보편화되고 있는 중이다. 물가의 기조적 하락, 이것은 경제가 급속도로 쇠락한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은 경제가 일종의 흥분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돈을 쓰겠다는 것을 못 쓰게 하는 것은 안 쓰겠다는 것을 쓰게 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플레이션은 일종의 무력증에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디플레이션 심리가 확대되는 국면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디플레이션 심리는 결국 대내외 통화충격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해외에서 유동성 유입이 매우 중요하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금 유통을 보여주는 M1 통화량 증가율이 무역수지의 궤적과 유사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그림 1].

따라서 작년 하반기 미중 간의 무역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무역수지 감소에 따른 국내 통화량 증가율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물가하락을 가속화시키는 배경이 되고 있다[그림 2].


2. 보수적인 통화정책 스탠스가 가져온 디플레이션 압력

이처럼 명목금리보다 물가 하락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결국 명목에서 물가를 차감한 실질금리는 상승하게 된다. 실질금리 상승은 소비와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디플레이션 압력은 실질보다는 명목 성장률에 우선 영향을 준다. 아래 [그림 3]에서 보듯이 OECD 36개국가를 대상으로 살펴 보면 금융위기 전후 실질금리 변화와 명목성장률 변화가 뚜렷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이러한 디플레이션 충격에 대해 너무 무심하게 대응해왔다는 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하나? 가계부채라는 잠재적 리스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디플레이션이라는 가까운 적을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실제 한국의 경우 금융위기 이전 기간인 2000~2007년 8.3%의 높은 명목성장률이 2012~2018년 사이에 4.5%를 기록 OECD에 속한 국가들 중에서 성장률 하락 순위로 12위를 기록했다[그림 4].

이처럼 명목성장률 하락이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보수적인 통화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국가가 매우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펼친 데 비해 한국은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국의 실질금리는 같은 기간 80bp 하락에 그치면서 OECD 국가들 중에서 상위 10위로 매우 보수적인 통화정책을 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5].


3. 디플레이션 탈출의 경로, 행동하거나 기다리거나

현재 한국이 처한 디플레이션 위협은 단순히 재정으로만 해결되기는 어렵다. 통화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과도하게 높아진 국내 저축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매우 공격적인 금리인하가 필요하다. 올해와 내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연내 50bp 금리인하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깜짝 인하에 나서면서 오랜만에 한국은행은 선제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특성상 앞으로 보다 더 공격적인 금리인하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이면 연내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면서 한국은행은 연내 추가 인하에 나설 수 밖에 없으리라 판단된다.

만약 통화정책이 가계부채에 발목이 잡힌다면 소비와 투자 회복은 해외 경기 상황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소비 회복은 교역조건이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투자회복은 반도체 경기사이클이 돌아섰다는 확신이 들어야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회복의 경로는 자체적으로 한국은행이 50bp 금리인하에 나서거나 혹은 해외 여건이 우호적으로 돌아서기를 기다리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후자가 더 유력해 보인다.

= = = = =

※ 보고서를 공유하는 기회에 평소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고자 한다.

보고서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창의력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대학 입학 수험생도 아니고 운동선수도 아니다. 창의력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정책 당국자와 입법 담당자들이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지 경제는 웬만하면 어느 정도 성장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 일환으로 정책 당국자들조차도 기업들은 상황이 어떻든 돈을 벌어온다고 믿는 것 같다. 따라서 고위 당국자조차도 성장률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우리만 저성장에 빠진 게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도 들린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좋게 말해서 무지의 결과이며 심하게 말하면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범죄행위와 다르지 않다. 

2.7% 성장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잘못된 정책이나 접근으로 2.6% 성장하는 데 그쳤다면 그냥 멋쩍게 웃어넘기는 것으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여기서 0.1%포인트는 영영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국민들 가운데는 바로 이 0.1%포인트 때문에 고통에 빠지는 사람들도 나오게 된다. 

심지어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런 식의 성장은 할 필요가 없다"라는 식의 발언도 들려온다. 위험한 생각이다. 정책 당국의 무능은 그저 "운이 없었다"고 하고 넘어갈 수 없다. 잘못된 경제 운영은 지지자들뿐 아니라 전체 국민,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참고로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한국은행의 디플레이터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및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모두 최근 한국에서 디플레이션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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