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중산층 사회》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저자: 조귀동
출판사: 생각의힘
발간일: 2020.01.20.
페이지: 312
ISBN: 979118558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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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20대는 부모의 헌신적인 보호와 고등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포함한 국가ㆍ사회로부터의 각종 보살핌을 모두 마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펼치기 시작하는 세대라는 큰 의미가 있다. 대학에 진학해 돈을 내고 학업을 계속하든 취업해 돈을 벌든 이제 20대는 사회의 한 책임 있는 일원인 것이다. 따라서 국방의 의무에서부터 납세의 의무까지 각종 의무를 이행하기 시작하는 것도 20대 때다.
20대라면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또 그 부모가 20대였을 때든 비슷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한국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표현이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약화한 표현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한 한국에서는 20대는 오늘과 어제가 다르고 또 불과 1년 전과는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오죽하면 같은 1990년대생들 사이에도 끝자리가 2000으로 반올림되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를 나눈다는 말도 있다.
한국인들은 워낙 이렇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일에 익숙해서 그런 말을 들어도 "또 그 소리냐"고 하겠지만 아래 그림을 보면 이런 일이 한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제대로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래 그림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정리한 1980년 이후 주요 20개국(G20)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구매력평가(PPP) 가치 기준으로 표시한 다음 미국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매 5년간 평균을 사용했으며, 미국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이유는 미국이 가장 표준적인 궤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상위권에는 이른바 선진 7개국(G7)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기간 1인당 GDP가 미국의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아래쪽에는 나머지 G20 국가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독특한 경제 구조로 인해 숫자가 왜곡돼 나타난 사우디아라비아는 제외했다. 그림을 보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미국의 40%를 넘어 70%까지 뛰어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5개국이 있다.
우선 일본은 1인당 GDP가 한때 미국의 80% 중반을 넘어 곧 미국을 앞지르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를 보였으나, 이후 지속적인 둔화세를 보였다. 이탈리아는 1990년대 이후 둔화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최근에는 오히려 둔화세가 가속하는 모습이다. 터키와 중국은 놀라운 기세로 1인당 GDP를 끌어 올리고 있으나 여전히 절대 수준이 낮다. 그런데 1980년대 첫 5년간 1인당 GDP가 미국의 20%에 머물렀다가 쉬지 않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G7인 이탈리아를 추월하고 드디어 일본도 추월할 기세를 띠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따라서 한국의 어떤 사회 현상을 얘기할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90년대생 20대와 80년대생이 20대였을 때를 비교하는 건 쉽지 않으며, 더구나 다른 어느 나라의 90년대생과 비교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소개하는 《세습 중산층 사회》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 책은 거의 모든 분석을 직접, 그리고 국내에서 생산된 믿을 만한 통계를 사용해 수행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많은 저작물이 근거도 희박하며 연관성도 의문시되는 2차, 3차 통계를 아무렇게나 인용하면서 처음부터 짜인 결론을 억지로 강요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1차적인 통계를 인용하되, 통계 생산자가 제시한 결론을 그대로 빌려 쓰지 않고 통계를 저자 스스로 자신만의 분석에 이용하는 것도 놀라웠다.
첫 그래프는 "대졸 취업자의 직장 규모 및 일자리 유형에 따른 임금(초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그림을 소개하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고 원칙에 충실한 연구자의 자세를 보여 준다. "권혜자ㆍ이혜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이 전문대학 이상 대학 졸업자의 근로 행태와 급여를 분석한 결과인 <그림 1-1>에 따르면 이른바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 집단 계열사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월 305만1,000원을 받는데, 중견기업에 취업하면 월 245만2,000원, 중소기업(종사자 수 300인 미만)에 취업하면 월 191만4,000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p26)"라는 설명을 읽다 보면 빈틈을 찾기 어렵다.
통계의 출처와 내용, 그리고 특성과 분석 방법 등을 상세히 본문에 적어넣는 바람에 간혹 글을 읽어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집중하기도 어려운 면은 있다. 그렇지만 뒷부분으로 가면 어느덧 저자의 이런 방식에 익숙해서인지 통계보다 설명과 주장이 서서히 많아져서 그런지 불편함은 별로 느끼지 못한다.
저자는 수많은 1차 자료를 재분석하고 응용해 현재의 20대라고 할 1990년대생이 1980년대생과는 어떻게 다른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90년대생들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일자리를 가진 부모가 확보한 경제력과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명문대 졸업장과 괜찮은 일자리를 독식하는 '세습 중산층의 자녀 세대'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집단"이라면서 "바로 이것이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이 이전 세대가 경험한 불평등과 질적으로 다른 이유다(p147)"라고 저자는 규정한다.
오늘날 20대를 수많은 통계를 활용해 규명해낸 것이 이 책이 가진 독보적인 가치다. 물론, 흔히 말하는 586세대에 해당하면서 80년대생과 90년대생 자녀를 둔 나로서는 7장 계급의식의 형성, 8장 '20대 남성 보수화'라는 신화, 그리고 에필로그 부분에 포함된 저자의 주장 가운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거나 문제 제기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이 지닌 엄청난 가치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은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나 문제 제기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통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의 자세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저자의 후속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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