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는 4차산업혁명의 쌀이라고 불리며 그 존재감을 날로 키우고 있다. 한국이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선두권에서는 좀 떨어진 느낌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2022년 기준 6,000억 달러) 중 메모리 비중은 23.88%에 그친 반면 비메모리 비중은 76.12%로 파악된다. 게다가 비메모리반도체라는 것은 제품별로 일률적인 것이 아니어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제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제품도 있다. 따라서 시장 동향과 선두권 국가들의 전략 등을 제때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턱대고 세계 몇위를 하겠다는 것도 의미가 없다. 이와 관련해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세계 비메모리반도체 시장 지형과 정책 시사점』이라는 보고서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보고서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지형"을 제때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고서 전문은 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세계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지형
(1) 국가별 경쟁우위
미국 주요 기업들의 비메모리 소자 시장 내 강점 분야는 첫째, PC 및 스마트폰의 발원(發源) 국가로서 CPU 및 AP 등 범용 프로세서, 유무선 통신 및 GPU, FPGA 등으로 시장을 대부분 독점하고 있다. 둘째, 집적회로 기술의 초기 주요 수요 산업이었던 군사, 우주·항공 및 자동차와 기계 등에 투입되는 아날로그, 이산(개별)형 소자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자동차 및 산업용 로봇 등 주력 수요산업향(向) 임베디드 시스템 관련 소자 즉, MCU 및 이산형과 전력제어(PMIC) 및 광학·비광학 센서류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 비메모리반도체산업의 특징은 ‘전략형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럽과 비슷하게 자동차, 정밀 기계 등 특정 수요를 대상으로 하는 MCU, 이산형 반도체에 더하여, CMOS 이미지센서와 정밀 통신소자 등 자체 및 범용 수요가 있는 분야에도 일부 경쟁우위를 보유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시장형 선택과 집중’, 즉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투입 수요가 큰 일부 소자군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중국은 폭넓은 제조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어 다양한 비메모리 소자 전반에 걸쳐 기업군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요 소자분류별 매출에서 1위를 차지한 분야는 없으며 주요 기업 수 역시 타 국가 대비 매우 적다. 향후 국가의 시스템반도체 전략 수립과 포지션 식별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향 모색을 위한 다각적 실태 진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2) 기업 형태 및 종류
우선 반도체만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기업과 애플, 삼성전자, 소니 등 SW 플랫폼, 디바이스, 서비스, 금융 등 이종(異種) 사업을 함께 영위하는 기업도 상당수 존재한다. 또한, 소수의 주력소자로 연간 수십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엔비디아, 퀄컴, 미디어텍(GPU, AP 등) 등의 기업이 있는가 하면 수백 개 이상의 제품 포트폴리오로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피니온 등도 있다.
자체 반도체 제조시설을 보유한 기업과 팹리스 기업으로 분류할 수도 있으며 양자가 혼재된 경우가 많다. 일부 회사들의 경우 자사 브랜드로 출시된 칩뿐 아니라 기반기술에 대한 특허 라이선스 사용료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각국 주요 기업들은 오랜 역사 동안 다수의 인수합병(M&A) 결과 탄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개발비가 소요되는 여러 비메모리 소자군에 대한 시장과 인력 및 기술을 확보해 왔다. 초기 자금원은 정부의 R&D 예산, 정책 자금인 경우, 벤처캐피털 등이 개입한 경우, 모기업의 스핀아웃(Spin-Out) 등 다양하다.
반도체 분야 대기업의 경우, 독자적인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하여 반도체뿐 아니라 AI 등 유망 신사업에 출자하고 있으며 중소중견 기업들 역시 자사 사업 개발 및 확장 목적으로 지분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3) 수요산업
비메모리반도체는 범용성이 높은 메모리와는 달리 투입 수요산업과 제품별로 각 소자의 용도 및 특성, 그리고 경쟁우위 구성요소가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소자가 존재한다. 모바일 및 일부 데스크탑 분야에서 AP 등 SoC를 중심으로 고집적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일각에서는 마치 반도체 기술 수준의 유일한 척도가 선폭미세화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자동차, 우주·항공, 정밀 로봇, 유무선 통신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도체가 활용되는 만큼 요구되는 성능 및 신뢰성 기준 역시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속도 대비 극한의 내구성이 요구되는 경우의 재료물성 값과 이를 위한 공정 요건 역
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비메모리 강자(强者)들은 고객사 제품 즉 ‘시스템’의 요구 실현을 위해 개발 단계부터 오랜 기간 협력을 거듭해 왔으며 이는 반도체뿐 아니라 이를 적용하는 기술(Operational Technology, OT)에서도 고도의 기초 및 응용과학 지식을 체화한 인력 풀(Pool)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비메모리의 경우 메모리와 같은 상대적으로 정형화된 접근 방식(속도 및 수율 향상 등) 만으로는 시장 공략에 한계가 분명하며, 장기간에 걸친 목표 대상 분야(도메인) 실력 배양과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한 분야이다.
시사점
(1) 비메모리 소자 및 기업 비즈니스 모델의 다양성
수요산업 및 용도별 시스템반도체 소자는 매우 다양하며 개별 기업의 규모, 강점 기술 분야(도메인), 비즈니스 모델 역시 상이하다.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혹은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등의 구호는 추상적이며,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 무수한 개별 소자 가운데 소수 일부에 자원 투입이 편중될 우려가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신(新)수종 사업의 성공률은 높지 않으며, 다양한 비메모리 소자 부문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 및 주요 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다종(多種) 소자 및 기술을 포괄하는 포트폴리오 접근이 필요하다.
(2) 국가 시스템반도체 전략 수립 필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 등의 마련으로 한국 중앙정부는 시스템반도체산업 지원 근거 및 거버넌스를 마련하고 자원 투입 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가 재원을 투입하더라도 한국 기업들의 시장 개척 가능성이 낮거나, 성공하더라도 단일 소자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분야의 경우 예산 사용의 타당성 및 경제안보 레버리지 확보 목표와의 괴리가 우려된다. 한정된 국가 자원의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낭비 예방과 비메모리 산업 발전을 위한 실체적 대안 모색을 위해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복합적 다양성과 메모리와의 차별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리고 국내 역량의 다각적 실태 파악이 요구된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적 전략 수립 및 해당 전략에 기반한 중장기 관점의 자원 배분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
(3) 판로 확보 위한 종합적 시장 정보 및
인텔리전스 생산
시스템반도체 소자 분류 및 국가와 기업 점유율에서 관측된 바, 핵심 수요산업 내 주요 기업의
니즈(Needs) 충족 및 판로 확보가 우리 비메모리
산업 성과와 직결된다. 우리 주요 기업이 판로를
기(旣) 확보한 분야의 경쟁우위를 고도화하는 한편, 개척 목표 분야를 대상으로 소자뿐 아니라 투입 제품 즉, ‘시스템’ 전체 이해도 제고는 물론, 시장 구도와 경쟁우위 요소에 대한 종합적 정보 수집과 분석이 필요하다.
즉, 정책 관점에서는 국가
전략의 실행 및 검증(테스트) 단계이자 기업 관점에서는 실제 사업 단계에서 정보 함량이 높은 인텔리전스의 생산이 요구된다.
향후 기존에 존재하던 비메모리 소자 시장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연관 첨단산업 및 이와 융복합된 주력산업 분야에서도 신(新)기술·제품·소자가
끊임없이 등장할 전망이다.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므로, 정책과 기업의 적극적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생동감 있는 현장의 정보를 다시금 국가 및 기업 전략 수립 과정에 적시 반영하는 환류(Feedback) 프로세스를 구축하여 역동적이며 지속가능한 생태계(Autonomous & Sustainable Dynamic Eco-System)를
창출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