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산업이다. 반도체만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반도체가 현재로서는 국가 경제 성적을 좌우하는 최대 업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가 배경부터 역사, 그리고 최근 동향까지 미국과 유럽연합이 발표한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을 4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로 상세히 정리했다. 여기서는 요약만 소개하고 보고서 링크는 맨 아래 공유한다.
미국, EU, 일본 등이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는 스마트폰, 항공기, 자동차, 인터넷 등 모든 첨단 산업과 전략무기 체계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반도체 공급망 확보는 경제성장 및 국가안보에 직결된다. 미국과 유럽은 주로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제조 및 후공정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분화된 공정구조는 특정국 의존도 심화를 야기해 반도체 공급망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Covid 팬데믹으로 반도체 공급망 불균형이 장기화되며 주요국들의 경제와 일부 산업은 직격타를 맞았다. 미국, EU 등 주요국들은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으며 반도체 제조 기반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미국은 그 중요도가 급증한 중국의 반도체 시장과 기술력에 위기를 감지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내 첨단반도체 개발 가능성을 차단에 나서는 동시에 제3국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전략은 크게 ▲보조금/세액공제 등 국내지원, ▲수출통제, ▲글로벌 연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미국이 50년 동안 시행해온 산업정책 중 가장 큰 규모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은 동 법을 통해 반도체 제조시설에 390억 달러, R&D 및 인력개발에 110억 달러, 반도체 제조, 장비구매,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에 240억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미국은 이러한 보조금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데 사용되지 않도록 지원기업에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투자·연구·개발 약속, 초과 이익 공유, 기업 민감자료 제출, 중국에서의 반도체 제조시설 확장 및 공동 연구·기술 라이센싱 금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반도체가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dual-use)성을 강조하는 한편 중국 내 첨단반도체 개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기존의 수출통제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동맹(Chips Alliance), 반도체 공급망 선상의 주요국과의 협력채널 강화 등 글로벌 연대로 더욱 고삐를 조여나가고 있다.
EU는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총 430억 유로를 투자하는 반도체법(EU Chips Act)에 합의하였다. 동 법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현재 10%인 점유율을 2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로 ▲반도체 기술역량 강화 및 역내 생산능력 확보, ▲공급망 모니터링 및 위기대응 체계 도입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EU는 반도체 기술역량을 강화를 위한 반도체 이니셔티브를 설립하고, 역내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EU 내 최초 제조시설을 건설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반도체 공급망 및 가치사슬을 모니터링을 위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수요 및 공급 부족을 예측해 위기에 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EU도 미국과 같이 반도체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 입장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투자 및 수출통제 강화, 반도체 분야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 등을 위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이 발표된 후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내 반도체 및 청정기술 분야에 2,10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투자할 경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총 설비투자액의 5~15% 수준으로 예상되며, 반도체 제조, 장비구매, 설비투자 금액의 25%에 상응하는 세액공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조금 혜택에는 주의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대중국 투자제한, 초과이익환수, 민감정보 제출 등의 요건 준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반도체 제조국 대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시황에 이익변동폭이 큰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상품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 구조 하에서는 미국의 보조금 신청요건이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반도체 기업은 각 항목에 대한 득과 실을 평가하여 신중하게 보조금지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EU 반도체법이 우리 반도체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경우 경쟁국(한, 미, 일)의 보조금 정책, 인력확보의 어려움, 높은 운영비용, 회원국과 기업 간 지원규모에 대한 입장 차이 등의 이유로 대규모 반도체공장 투자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U시장은 첨단반도체 팹에 대한 수요가 적고, 반도체 생태계 기반이 약하며, 높은 운영비용 및 인력확보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우리 기업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비춰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과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에 있어 EU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도체에 소요될 소재·부품·장비를 생산하는 우리 기업들은 EU진출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해 볼 만 하다.
주요국들의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이 실현되는 2025-2030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도 반도체 육성전략을 마련하고, 소위 반도체특별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며 대응에 나섰다. 주요국의 반도체 지원정책이 보조금과 수출통제로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은 노동력 확보다. 주요국에서 대규모 설비 증설이 이루어지는 만큼 기업들의 핵심인재 확보와 안정적인 인력 공급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인력공급에 대한 민관의 노력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