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블로그 검색◀

(보고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최대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바로 이것

한국 주식시장과 관련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에 관한 논의는 아마 수십년간 계속되어 온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대치 지역이라는 상황과 관련한 리스크, 즉, 북한 리스크를 최대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전체적인 경제력은 뒤쳐지지만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무력 통일 의욕을 공공연히 내비치던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니까 한편으론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점차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있어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위치까지 다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국방력은 핵무기 보유 여부 자체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국제기구에서 평가한 군사력 순위에서 남한은 세계 5위에 오른 반면, 북한은 세계 36위로 뒤쳐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국지적 충돌이나 정치적 목적을 의식한 도발은 있을 수 있어도 북한이 남한의 주식 가치에 기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남한 주식시장을 둘러싼 자체 요인을 들여다보는 논의가 급격히 커졌다. 들여다 보니 북한보다 훨씬 중요한 제약 요인들이 남한 주식시장 자체에 있더라는 진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자본시장 법제도 개선』)가 상당 부분 필자가 생각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어서 소개한다. 특히 제도적 개선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사법부의 현실 인식 제고 필요성이라는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제도가 있어도 이를 실제 상황에 뿌리 내리도록 하는 데는 사법부의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 출처: businesskorea.co.kr)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가장 중요한 개선 과제를 꼽으라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우리나라 상장회사의 주가가 순자산가치나 수익성이 비슷한 다른 나라 상장회사의 주가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2021년 기간 중 국내 상장회사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 亞太 국가의 69%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비슷한 실적을 보이더라도 우리나라 상장회사 주식이 선진국 상장회사 주식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밖에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과 개선 필요성

우리나라 주식이 유독 저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제시된다. 상장회사들의 낮은 배당 성향, 국내 산업구조 측면에서 기인하는 낮은 수익성, 또한 외환시장 관련 규제나 지정학적 위험성으로 인한 외국인 투자 유입 부족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상장회사의 지배구조 문제, 보다 구체적으로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의 상장회사에는 회사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존재한다.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주가란, 지배권이 없는 일반주주 보유 주식에 대해 시장이 평가하는 가격을 의미한다. 주가는 지배권이 없는 일반주주들 간의 거래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지배주주는 배당과 같이 주식 비율에 따라 비례적으로 귀속되는 현금흐름 이외에도 내부거래, 과도한 수준의 보수, 사업기회의 유용 등을 통해 회사로부터 추가적인 이익, 이른바 지배권의 사적이익(private benefit of control)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전체 주식가치가 같더라도, 지배주주가 누리는 사적이익이 크다면, 일반주주가 보유하는 주식의 가치, 즉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가는 사적이익이 적은 회사에 비해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상장회사는 일반적으로 지배권의 사적이익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래소에서의 주가, 즉 일반주주의 주식가치는 낮다는 평가와 달리, 지배권이 이전되는 M&A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주식가치는 비교적 적절한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도 우리나라 M&A 거래에서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적게는 10~20%에서 많게는 200%를 넘을 정도로 높게 형성된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그대로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지배주주가 보유하는 주식의 가치(M&A에서의 거래 가격)와 일반주주가 보유하는 주식의 가치(거래소에서의 주가) 간에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의 해결은 위 두 가격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지배권 사적이익의 규모가 크거나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보유주식 가치 간에 차이가 있더라도 별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상장회사 주식은 비슷한 실적의 다른 나라 상장회사 주식에 비해 저가에 매입할 수 있으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 때문에 이를 나중에 낮은 가격에 매각하더라도 특별히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지배주주가 일반주주들을 대신하여 회사 경영진을 감시(monitoring)하기 때문에 지배주주가 어느 정도의 사적이익을 누리는 것이 일반주주들 입장에서 반드시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할수록, 또 지배권의 사적이익이 클수록 지배주주가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내용으로 의사결정을 할 유인이 높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를 들어 30%의 지분만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지배주주라면, 회사가 100원의 자금으로 배당을 실시하여 이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각각 30원과 70원으로 나누어 받기보다는, 50원의 자금으로 지배주주에게 높은 보수를 지급하게 하거나 불공정한 자기거래를 통해 사적이익을 편취하는 것을 선호한다. 

회사에 대한 인수 제안이 오더라도 전체 주주가 비례적으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합병보다는 지배주주만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지분을 매각하는 주식양수도 거래를 선택할 유인을 갖는다. 이처럼 지배주주가 낮은 지분만으로 상장회사를 지배할수록, 또 지배권의 사적이익이 크면 클수록 지배주주는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법제도 개선과 시장을 통한 통제

지배권의 사적이익 통제는 1997년말 금융위기 이래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상법, 공정거래법, 세법, 형법 등 다양한 법률들을 통해 지배주주의 횡령 등 각종 사익편취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법률 개정을 통해 자기거래, 일감 몰아주기, 회사기회 유용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상장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자본시장 법제도 개선도 지난 1~2년 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22년에는 금융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 세미나를 연이어 개최하고, 의무공개매수 및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도입, 배당기준일 제도 개선, 물적분할 후 재상장 제도 개선, 자기주식 관련 제도 개선, 전환사채 관련 투자자 보호, 불공정거래 과징금 제도 도입 등 다양한 일반주주 보호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방지와 일반주주 보호가 자본시장 법제도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히고 있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법제도 개선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자본시장 개선에는 일반적으로 법률과 함께 시장과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의무를 위반한 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주주대표소송이 매년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이사나 지배주주가 구체적으로 어느 경우에 책임을 부담하는지와 관련한 판례의 축적이 다소 부족하다. 

여러 법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시장이나 법원의 역할은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배주주의 사익편취를 통제할 시장 참여자의 역할이 더욱 활발해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균형 있는 투자자 보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의 해소를 통해 우리 자본시장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

▶최근 7일간 많이 본 글◀

태그

국제 경제일반 경제정책 경제지표 금융시장 기타 한국경제 *논평 보고서 산업 중국경제 fb *스크랩 부동산 KoreaViews 책소개 트럼포노믹스 일본경제 뉴스레터 tech 미국경제 통화정책 공유 무역분쟁 아베노믹스 가계부채 블록체인 가상화폐 한국은행 원자재 환율 외교 국제금융센터 암호화페 북한 외환 중국 인구 한은 반도체 에너지 정치 증시 하이투자증권 코로나 금리 AI 미국 연준 주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논평 수출 자본시장연구원 중동 채권 일본은행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산업연구원 칼럼 한국금융연구원 BOJ ICO 일본 자동차 국회입법조사처 삼성증권 생성형AI 세계경제 신한투자증권 에너지경제연구원 우크라이나 인공지능 인플레이션 전기차 지정학 한국 IBK투자증권 KIEP TheKoreaHerald 미중관계 분쟁 브렉시트 현대경제연구원 BIS CRE IT KB경영연구소 KB증권 OECD 대신증권 무역 배터리 상업용부동산 수소산업 원유 유럽 유진투자증권 저출산 전쟁 ECB IBK기업은행 IEA KIET LG경영연구원 NBER PF 공급망 관광 광물 기후변화 보험연구원 비트코인 생산성 선거 신용등급 신흥국 아르헨티나 연금 원자력 유럽경제 유안타증권 유춘식 이차전지 자본시장 자연이자율 중앙은행 키움증권 타이완 터키 패권경쟁 한국무역협회 환경 Bernanke CBDC DRAM ESG EU IPEF IRA KDB미래전략연구소 KOTRA MBC라디오 ODA PIIE RSU SNS Z세대 경제안보외교센터 경제학 고용 골드만삭스 공급위기 광주형일자리 교역 구조조정 국민연금 국제금융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국제유가 국회미래연구원 국회예산정책처 규제 넷제로 논문 대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독일 동북아금융허브 디지털트윈 러시아 로봇 로봇산업 로슈 로이터통신 머스크 물류 물적분할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버냉키 복수상장 부실기업 블룸버그 사회 삼프로TV 석유화학 소고 소비 수출입 스테이블코인 스티글리츠 스페이스X 신한금융투자증권 씨티그룹 아프리카 액티브시니어 양도제한조건부주식 예금보험공사 외국인투자 원전 위안 유럽연합 유로 은행 이승만 인도 인도네시아 자산관리서비스 자산운용업 잘파세대 재정건전성 주간프리뷰 중립금리 철강 코리아디스카운트 코스피 테슬라 통계 통화스왑 통화신용정책보고서 팬데믹 프랑스 플라자합의 피치 하나증권 하마스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혁신 홍콩 횡재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