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일은 현대 세계 경제사에 최대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이후 연평균 10%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2001년 GDP 세계 6위에서 2010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단순가공 기지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여러 부문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일부 첨단기술 부문에서의 열악한 경쟁력, 미국의 강도 높은 견제, 1인 장기집권 체제가 갖는 경제정책 효율성의 한계, 그리고 둔화하는 성장 잠재력 등이 최근에 중국 경제의 약점으로 지적되고는 있으나, 전기차 등의 부문에서는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루며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의 경우 내수시장을 장악한 여세를 몰아 최근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 미국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의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배터리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중국 배터리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기존에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한국 배터리 기업의 점유율은 하락하고 있다.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한·중 간 경합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 유형 및 특징을 파악하고 주요 기업의 전략과 경쟁력을 분석하는 것은 한국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 및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관한 최근 정보를 정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모두 129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해외 진출 사례 연구 및 시사점』)는 중국 시장 현황과 중국산 배터리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해 살펴보고,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 유형별 특징을 파악하고자 했다. 또한 중국의 대표 전기차 배터리 기업을 선정하여 기업의 전략과 경쟁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 정부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 고찰하고자 했다.
여기서는 결론 부분의 요약 내용을 소개한다. 보고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링크는 맨 아래 공유한다. 보고서에는 특히 최근 정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방대한 참고 문헌 목록을 제공하고 있어서 꼭 전문을 구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사진 출처: energy.economictimes.indiatimes.com) |
중국 배터리 산업의 발전 현황
1) 중국 시장 현황
수요 측면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며 배터리 수요가 2025년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 1TWh 이상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공공 부문의 전기차 사용 확대, 전기차 충전 및 교환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막대한 수요 증대를 견인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LFP 배터리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며 2021년 삼원계 배터리 사용량을 추월하였으며, 2023년 중국 시장의 LFP와 삼원계의 점유율이 각각 67%와 33%에 달해 대부분의 전기차종에 LFP 배터리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 측면에서는 삼원계 배터리 분야에서는 CATL이 과반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LFP 배터리 분야에서는 BYD 40%, CATL이 34%로 두 기업이 7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또한 중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이 급증하고 있으며 2022년 이후에만 총 2,500GWh의 생산능력 구축 프로젝트(금액 기준 한화 약 252조 원)가 추진되고 있다.
또한 중국 배터리 시장의 공급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CATL을 포함한 대부분 기업들의 공장 가동률도 급감하고 있고 재고 압박도 증대되고 있으며, CALB 등 상위권 기업도 이익률 하락 등 경영악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량이 1~1.2TWh, 생산능력은 4TWh로 예상되어 중국의 배터리 공급과잉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2) 중국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
업스트림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 대비 중국 기업이 생산하는 배터리는 가격 경쟁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글로벌 핵심 자원 확보에 힘을 실어 왔고 여기에 더해 다수의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 국내외에서 자원개발, 지분 매수, 공급 계약 등을 통해 원재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특히 주요 기업은 업스트림 단위에서부터 수직계열화를 이루어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중국 시장의 공급과잉과 가격 경쟁으로 인해 중국산 배터리의 평균 가격 수준은 이미 중국 정부의 목표치인 110달러 아래로 하락하였으며 일부 기업의 경우 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덤핑공세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산 배터리는 단지 가격이 싸서 경쟁력이 있다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저성능으로만 여겨지던 중국산 LFP 배터리는 에너지밀도, 셀투팩 등의 기술 수준이 크게 상승하였고, 삼원계 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매서우며 한국은 초격차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이뿐만 아니라 리튬황, 전고체, 나트륨 이온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투자해 다수의 특허를 확보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중국이 차세대 분야에서 한국을 앞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 유형별 사례와 특징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유형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증가에 대응한 수출 확대, △주요 국가・지역의 배터리 공급망 내재화 정책에 대응한 현지 투자생산, △M&A를 활용한 초국적 경영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인 수출 확대는 중국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며 2023년까지 대부분의 중국 기업이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배터리 생산의 약 19%를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022년 중국의 리튬이온배터리 수출액은 2019년 대비 4배 수준으로 증가하였고 이 중 약 90%가 전기차용 배터리였다.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인 CATL은 지금까지 수출을 통해 글로벌 점유율을 확대해 왔으며, BYD의 경우 배터리 단독 판매보다는 자사 전기차 수출이 확대되면서 차체에 탑재된 자체 제조 배터리의 사용량도 증가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중국 기업의 수출을 통한 해외 판매가 현재까지는 유효했지만 미국의 IRA,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등 주요 국가가 전기차 공급망의 내재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차별적 규제를 내놓고 있으므로 향후 수출을 통한 해외 사업 확대는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두 번째 유형인 현지 투자생산은 2022년 이후 다수의 중국 기업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방식이다.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시장의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현지 생산이 본격화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완성차 업체가 물류비용, 품질 관리 및 검증, A/S, 출하 시간비용 등을 고려해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근거리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받길 원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과 미국이 전기차 공급망의 내재화 정책을 통해 배터리의 현지 생산을 유도하고 있어 중국 배터리 기업의 해외 투자생산 유인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유럽은 셀 제조 및 배터리 조립 역량이 수요 대비 크게 부족한 상황으로 이는 2030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어, 유럽 역내 배터리 수요 충족을 위해서는 중국을 포함한 역외 기업의 현지 생산이 꼭 필요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유럽은 EU 배터리법 등을 통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배터리의 시장진입을 차단하고자 하지만 중국 기업의 대유럽 투자생산에 대해 특별히 차별적 규제는 취하지 않고 있으며 헝가리 등 EU 회원국은 오히려 중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이에 다수의 중국 기업이 대유럽 그린필드 투자를 적극 계획하고 있고, 이들의 유럽 생산능력 구축 계획은 합계 300GWh를 상회한다. CATL과 궈쉬안하이테크는 이미 유럽 내 양산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역시 증가하는 배터리 수요에 비해 역내 생산능력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며 유럽처럼 전기차 및 배터리 공급망을 내재화하고자 하지만, 유럽과 달리 중국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자국 내 생산능력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정책이 IRA 정책이며 2023년 12월 미국 정부는 중국 내 모든 배터리 기업을 해외 우려 집단(FEOC)으로 규정하였다. 다만 일부 우회로를 열어주었는데, △중국 민간기업이 해외 자회사(정부 관할권 無)를 통한 현지 생산공장 건설, △기술 라이선스 계약(중국 측 실질적 통제권 無),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 지분 25% 이하의 합작회사 설립을 통해 미국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IRA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해당 규정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존재하며 미국 당국의 판단이 계속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장의 이러한 다중적 리스크와 비용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은 미국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고 있으며 이는 미국 시장의 거대한 수요와 FEOC 지침과 관계 없이 지원되는 막대한 규모의 배터리 제조 관련 지원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CATL과 궈쉬안하이테크, EVE 등 중국 기업들은 우회로를 통한 미국 진출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 유형은 일부 중국 기업들이 M&A를 통해 중국의 국적을 희석하여 초국적 경영을 시도하고 있는 방식이다. 궈쉬안하이테크와 엔비전AESC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들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과의 지분 매매를 통해 기업의 국적을 희석하거나 글로벌 기업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프라, 노하우, 네트워크 등을 적극 활용하여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자 한다. 해당 두 기업은 동유럽에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과 달리 서유럽에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거나 이미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이는 목표 시장 내에서 수요에 더욱 기민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로 파악된다.
먼저 궈쉬안하이테크는 2021년 폭스바겐에 대량의 지분을 매도하였고, 2023년 현재 폭스바겐이 24.74%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이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표결권을 가지지 않으며 궈쉬안하이테크의 실질적인 지배력과 의사결정권은 중국 측 오너 일가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스바겐은 궈쉬안하이테크의 해외시장 진출과 해외 경영활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폭스바겐의 지분 인수 이후 궈쉬안의 해외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엔비전AESC도 2018년 중국 엔비전 그룹이 일본 AESC의 지분 80%를 인수하며 탄생하였고 인수 이후 AESC가 가지고 있던 일본, 미국, 영국 등의 기존 배터리 공장과 네트워크, 연구 인력, 특허 자산 등이 엔비전 그룹으로 흡수되었다. 동사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생산라인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20% 지분을 가진 닛산이 엔비전AESC의 해외 사업 추진 시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기업의 전략
먼저 중국 최대이자 최고의 배터리 기업인 CATL은 삼원계, LFP 등 배터리 종류를 가리지 않고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당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과 해외 투자생산을 통해 유럽과 미국, 동남아 등 전 세계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CATL은 특히 원재료 채굴 및 가공부터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까지 공급망 전체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R&D 투자를 바탕으로 기술 수준을 크게 개선하였다. CATL은 이른바 ‘가격 대비 성능’을 무기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궈쉬안하이테크는 대주주인 폭스바겐을 등에 업고 중국 기업 중 해외 사업을 가장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동사는 오랜 기간 축적한 LFP 배터리 관련 기술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LFP 분야의 경쟁력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재 폭스바겐과 함께 삼원계 배터리 분야의 연구 개발도 적극 진행하고 있어 향후 성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궈쉬안하이테크는 핵심 원료와 소재를 자체 조달하는 등 업스트림 공급망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미국 등 해외에서도 배터리 셀 제조뿐만 아니라 양·음극재 생산능력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동사는 중국 내 다수의 지방정부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토지혜택, 제세 감면과 보조금 혜택은 물론 R&D 분야에서도 정부측과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점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강력하고 기술경쟁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해외시장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선제적으로 현지 투자생산을 추진해 왔고 그 결과 유럽과 미국의 배터리 시장을 일정 부분 선점할 수 있었다. 다만 향후 유럽 및 미국 시장과 큰 수요가 잠재된 동남아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현지 생산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중 기업 간 경합이 더욱 심화될 것이고 현재 한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는 시장의 일부를 내어줘야 할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한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제고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지역의 증가하는 배터리 수요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지 생산능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부 지원의 강화가 시급하다. 또한 더욱 근본적으로는 한국 배터리 산업의 업스트림 경쟁력 강화와 고도화된 설계 및 소재 기술 확보가 가장 중요하며 이는 민·관에 모두 해당되는 과제로 정부와 기업 간 지속적인 소통을 통한 단기와 중·장기에 걸친 체계적인 전략 수립이 긴요하다(표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