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1

(보고서) 분배문제: 우리는 과연 공평분배를 추구하고 있는가?

(※ 성명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의 글을 공유)

작금의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시대가 도래하면서 무한경쟁의 환경 속에서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저성장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한편 20세기 들어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결과로서 삶의 질과 영양상태·건강수준이 크게 개선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동시에 평균수명도 크게 연장되었다. 그동안 확장적으로 팽창하던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빠르게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용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인구고령화가 급진전되면서 노인빈곤 및 청년실업 문제가 새로운 사회·경제적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기술발전속도와 주기가 현저하게 빨라지고 짧아지면서 경제적 수명과 물리적 수명의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물리적으로 왕성하게 노동이 가능한 건강한 노인인구가 많아졌지만, 그들이 보유한 기술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급속히 쇠퇴하면서 비숙련노동시장에서조차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 결과 분배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계층분화와 사회적 갈등으로 격화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재작년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저서에서, 자본축적 비율이 과도하게 상승하면서 분배격차가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쉽게 해석하자면 소수의 사람들이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면서 분배격차가 극단적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자생적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초고세율의 자본소득세를 과세해야 분배의 불공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소위 분배문제에 정통한 경제학자들조차 그의 연구방법론과 정책제언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으면서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설득하여 합치된 결론에 도달하기 보다는, 찬반이 엇갈리면서 학술적 논쟁이 이념논쟁으로 점화되는 국면까지 치달았다. 최근에는 활화산처럼 들끓었던 그간의 논쟁 열기가 조금 식었다. 그렇지만 분배의 불공평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폭발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한폭탄처럼 잠시 수면 아래 조용히 몸을 숨긴 듯하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말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소득분배격차가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분배격차의 확대추세는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분배격차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걱정스럽다. 분배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주의 깊게 대응이 필요한 문제지만, 격차 확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해 막연하고 맹목적인 의심이 팽배하고 사실관계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부터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라는 것은 잠재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인구고령화가 급진전되면서 노인복지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인구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전개되고 있고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령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이 급속히 열악해지면서 일자리 창출이 지연되고 청년실업 문제가 당면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급격한 인구고령화와 노동시장의 불균형, 경제적·물리적 수명의 역전현상이 자칫 세대간 분배구조를 이분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범세계적 경기침체와 경제위기적 상황, 열악한 재정여건 등을 감안할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 고민스럽다. 따뜻한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 부족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부족한 복지재정 충당을 위해 종국적으로는 증세가 불가피하겠지만 속도와 범위 측면에서 과도한 증세는 오히려 경제를 위축시켜 경제적 부양능력을 축소시킬 위험성이 높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전제로 국채발행을 통해 무작정 빚을 지고 재원을 끌어올 수도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가 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재정정책수단을 찾는 것도 그만큼 쉽지 않다.

분배문제와 관련하여 소득불평등과 소득불균등에 대한 이해 부족과 그로인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소득불균등이란 경제활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소득 차이의 정도를 의미한다. 소득불평등이란 단순히 결과물로서 소득의 차이뿐만 아니라 투입의 차이까지 함께 고려하여 분배격차 수준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나타내는 공평성을 측정하는 지표이다.

우리가 흔히 소득불평등 지수로 알고 있는 지니계수와 앳킨슨지수 등은 소득불평등도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소득 격차, 즉 소득이 얼마나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나타내는 불균등도를 측정하는 지수이다. 예를 들어 지니계수는 사람들 사이의 소득비중이 얼만큼 균등한지 아닌지를 측정한다. 0이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액수의 소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1이면 한 사람이 모든 소득을 독점하고 나머지의 소득은 0원인 상태를 의미한다.

소득불균등도를 측정하는 지수만으로는 소득분포가 얼마나 평등한지 또는 불평등한지에 대해 알 수 없다. 불평등도를 알기 위해서는 결과물인 소득분배 격차 자체뿐만 아니라 투입된 양과 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일 투입에 대해 동일 산출이 대응되는 경우는 평등하다. 동일 투입에 대해 산출이 다르거나, 다른 투입에 대해 동일 산출이 대응되면 불평등한 것은 자명하다. 다른 투입에 대해 다른 산출이 대응될 때 산출 수준에 따라 평등할 수도 있고 불평등할 수도 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차이가 평등과 불평등을 구분해주는가? 불행히도 이에 대해서는 일치된 결론이나 황금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황금률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아무도 황금률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분배지수를 통해 소득분배가 얼마나 균등(equal)한지 또는 불균등(unequal)한지의 여부를 소득불균등도(income inequality)로 형상화하여 나타내고 있을 뿐, 소득불평등도(income inequity)에 대해서는 현재 알려진 바가 없다.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직까지 소득불평등도를 측정해주는 지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니계수가 상승하는 것을 두고 소득불평등도가 확대되었다고 단정짓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번역의 오류 때문이다. 상대소득격차 수준을 나타내는 영어 원문은 income inequality이다. inequality는 불균등을 나타낸다. 불평등을 의미하는 영어 원문은 inequity이다. 불균등이라고 쓰고 불평등이라고 오역한 것이다. 시작점에서는 번역의 오류에서 출발하였지만 소득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오래 사용하면서, 은연 중에 “소득 차이=불평등”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빠지는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소득불균등이란 소득의 상대적 차이의 정도를 나타낸다. 소득불평등이란 노력이나 투입 수준에 따라 결과물인 소득의 상대적 차이가 적정 수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나타낸다. 이론상 투입과 노력의 차이가 크다면 소득불균등도가 크더라도 평등한 소득분배를 나타낼 수도 있고, 반대로 소득이 모두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더라도 노력의 차이가 소득의 차이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역차별을 통해 매우 불평등한 소득분배 구조를 나타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회·경제적 차별에 의한 소득격차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치유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분명한 것은 차이에 의한 차등과 차별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같은 것은 동일하게 보상하고, 다른 것은 차별 없이 차등하여 보상하는 것이 적절하다. 차이를 허용하지 않는 균등분배는 결과적으로 경제적 유인제도를 말살하기 때문에 축소지향적 하향평준화를 피할 수 없다. 종국에는 영점(零點)으로 수렴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차별은 물론이고 차이조차도 쉽게 용납하지 않는 균등분배 목표의 늪에 빠진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암묵적으로 지니계수가 0인 상태,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한 액수의 소득이 분배된 상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소득격차가 확대되면 바람직하지 않고 격차가 축소되면 분배구조가 개선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행이 이를 방증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균등소득분배 상태가 반드시 공평한 소득분배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갈등요소가 잠재돼 있다. 모든 사람이 출발점에서의 투입과, 중간점에서의 노력이 동일하지 않다면 도착점에서의 분배상태가 균등한 것은 오히려 역차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 다른 분배구조의 불평등과 차별을 의미한다.

물론 과도한 분배격차도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 실패”의 결과로서 분배격차가 과도해진다면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공평한 분배란 어떤 것일까?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고 차별을 방지하여 시장의 실패를 보정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가운데 공정경쟁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합리적 수준의 분배 차이를 바람직한 수준의 분배격차, 즉 공평분배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과의 균등, 즉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균등한 소득분배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공평분배가 아니라 균등분배를 지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로는 평등(공평분배)을 주장하고 지향하면서 행동으로는 획일(균등분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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