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영연구원이 지난달에 발간한 보고서인데 못 보고 있다가 이제야 발견했다. 통계나 트렌드 관련 정보가 유용할 것으로 생각해, 늦었지만 블로그에 공유한다. 게다가 필자가 해당하는 세대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향후 한국 경제에서 주요 소비 주체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 부분이어서 관심이 간다.
액티브 시니어, 그들은 누구인가?
1970년대 중반 우리 사회에 등장한 ‘액티브 시니어’의 개념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 이후 특히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액티브 시니어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정의하는 명확하고 통일된 기준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액티브 시니어 시장을 겨냥한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들을 살펴보면, 은퇴를 경험하는 50대부터 건강한 신체를 가진 7, 80대까지 폭넓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연령에 따른 구분을 제시하기 어려운 면이 있으나, 지나치게 넓은 기준은 이들을 한데 묶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한다. 따라서 시니어가 이끄는 소비 트렌드와 그 중에서도 액티브 시니어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이들의 연령 기준을 세분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
개인마다 액티브 시니어의 연령대에 대한 생각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나,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공통된 특징은 있다.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왕성한 소비활동을 보이고, 가족만큼 자신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하여 나의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같은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연령대를 찾으려면, 연령과 경제적 수준, 지출 내역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탐색해야 한다.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자료에는 매년 가계의 자산, 소득, 지출 등을 조사하여 개별 가구의 응답 결과를 담은 마이크로데이터가 있다. 그 중 가구의 생활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가계금융복지조사와 가구의 지출을 분석하기 위한 가계동향조사의 데이터를 모두 살펴보았다.
먼저 한국 가구의 소비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유사한 소비 패턴을 가진 가구들을 한데 묶어 분류해보니, 가구의 소비 패턴은 주거환경 중심, 보건의료 중심, 식생활 중심, 자녀교육 중심, 여가활동 중심 등 5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패턴별 소비 유형은 가구의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였는데, 특히 경제적 요인 중에서는 자산 규모보다 소득수준과 연관성이 크게 나타났다.
소득이 적은 가구에서는 주거환경과 보건의료와 같은 필수적인 지출을 중심으로 소비가 이루어졌고, 식생활 중심형은 대체적으로 저소득 가구에서 많이 나타났으나 식문화의 다양성이 확대되면서 고소득 가구에서도 식생활을 중요시 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었다. 소득이 많은 가구에서는 자녀교육이나 여가활동을 위한 소비가 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여가활동 중심형은 외식, 여행, 쇼핑 등 여러 선택 소비에도 적극적인 편으로 나타났다.
액티브 시니어의 특징은 ‘탄탄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는 나 중심의 선택적 소비’로 요약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에 있어도 자신보다 가족 중심의 소비생활을 하거나 필요에 의한 지출 외에는 절약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액티브 시니어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소비여력이 부족한 저소득 가구를 제외하고 가구주 세대가 40~79세인 가구의 소비 유형을 살펴보니, 액티브 시니어의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연령대가 55~69세로 좁혀졌다. 40~54세에는 나를 위한 삶보다는 ‘부모로서의 삶’을 사는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학력이 높고 소득과 자산이 많을수록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는 학부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70세 이상의 소비자 중에도 여가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제법 있지만, 대개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한 노후를 보낸다. 이들은 경제력이 있어도 식생활 중심으로 소비하는 유형이 많고, 먹거리를 포함한 주거환경, 보건의료와 같이 꼭 필요한 소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55~69세에는 자녀 양육을 마치고 여행, 운동, 문화생활을 위해 시간적·경제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통계와 사례로 본 현재 액티브 시니어(55~69세)의 자화상
❶ 액티브 시니어의 건강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사회에서 활약하는 기간이 연장되었다. WHO에서 추정한 한국의 건강수명은 2000년 67.4세에서 2019년 73.1세까지 늘어났고,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69세의 68.4%가 자신의 건강상태가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신체적 제약이 완화됨에 따라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참여를 통해 노후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 55.3%였던 액티브 시니어의 경제활동참가율도 2023년 65.8%으로 증가하였다.
❷ 전통적 가치관에서 현대적 가치관으로의 변화를 경험하며 가족 중심적인 이전 시니어 세대와 달리 가족과 개인의 가치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시니어 계층에서 가족의 해체가 늘어난 것은 자신의 삶을 우선시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부상과 맥을 같이 한다. 전체 이혼건수 중 액티브 시니어의 이혼은 2000년 4.2%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24.6%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1인 가구 역시 2000년 16.2%에서 2022년 27.8%로 빠르게 증가했다. 동시에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가정에 만족한다고 답변한 경우는 1998년 31%에서 2022년 55%로 늘어나, 가족을 위해 참고 희생하기보다는 본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며 가정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❸ 액티브 시니어가 소비 시장의 주축으로 떠오른 데에는 이들이 소유한 많은 부가 영향을 주었다. 국민은행 주택가격지수는 1990년대 약간의 하향 및 안정기를 지나 2000년 이후 급격한 상승을 보였다. 지금의 액티브 시니어가 내 집 마련에 나서는 3,40대였을 때는 한국의 주택가격 상승기가 시작될 무렵으로, 이들은 이전·이후의 어느 세대보다 자산을 빠르게 축적할 수 있었다. 2021년 기준 전국의 주택소유자 중 46.7%가 5, 60대였으며 특히 12억을 초과하는 고가주택 소유자 중에서는 54.9%가 5,60대로 나타났다.
❹ 이들은 디지털 기기를 잘 활용하는 첫 시니어 세대이다. 지금의 액티브 시니어가 젊은 역군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1990년대는 PC가 대중화되고 인터넷이 보급된 시기로, 급속한 디지털화를 경험한 덕분에 이들은 높은 디지털 수용성을 갖게 되었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팬데믹을 계기로 디지털 기술에 더욱 익숙해지면서 6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90%를 넘기고 스마트폰을 필수매체로 인식하는 비율도 절반에 가까워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MZ세대를 빠르게 추격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파워
이제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 특성과 규모를 알아보기 위해 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의 소비를 분석해보자. 통계청 가구 소비 데이터는 가구 단위로 지출한 내역이 조사된 것으로, 구성원들이 각자 소비한 몫을 정확하게 골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건이 비슷한 가구들의 지출 규모를 비교하여 구성원의 특성에 따른 평균적인 소비 규모를 추측해볼 수는 있다. 즉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구가 구성되었는가에 따라 가구 소비가 달라진다고 가정한다면, 가구 소비 데이터로부터 나이에 따른 1인당 소비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추정된 연령대별 1인당 평균 소비금액을 통해 소비 시장에서 일어난 변화를 살펴보았다. 최근 55~69세의 인당 평균 소비는 젊은 소비 계층인 25~39세의 85%로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을 보였다. 반면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55~69세가 25~39세보다 평균적으로 75%만을 소비하여, 짧은 시간 내에 10%p의 급격한 성장이 나타났다.
코로나 이후 MZ세대의 소비가 늘어나며 이들이 트렌드를 이끌고 시장의 중심에 있다고 여겨졌던 것과 달리, 시니어 계층이 젊은 소비자들보다 더 빠르게 소비를 늘려온 것이다. 연령대별 인구를 감안하여 전체 시장의 규모를 비교할 경우,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게 나타난다. 55~69세 전체의 소비지출금액은 25~39세 전체가 소비하는 금액의 0.9배로 15년 전 0.4배 수준에서 성장을 이어왔다.
최근 55~69세가 소비의 주류로 자리 잡은 분야에는 대표적으로 식품업계가 있다. 팬데믹으로 외식이 줄고 가정식 수요가 늘어나면서 특히 60대의 내식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1인당 식품 소비의 증가와 시니어 인구의 증가로 55~69세 전체의 식료품구입비는 젊은 세대의 거의 2배에 육박했다. 이들의 니즈에 맞춰 간편하게 맛과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는 프리미엄 간편식 트렌드가 등장하였다.
액티브 시니어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운동에 관련된 소비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50대 이상에서 운동을 위한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55~69세 전체의 운동오락서비스 이용금액은 25~39세 전체의 0.9배로 동일 연령대 기준 고작 0.3배에 불과하던 10년 전과 큰 차이를 보였다. 시니어들이 정적인 여가를 즐길 것이라는 생각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것이다.
가전 소비는 팬데믹으로 갑자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3, 40대에서 급격히 성장했다. 젊은 층보다 이미 많은 것을 갖춘 상태에서 살고 있는 시니어들도 새로운 가전에 대한 소비를 늘렸다. 특히 요즘의 시니어들은 새로운 문화에 거부감이 적고 디지털 친화력이 높아 고기능 가전과 IT 기기도 곧잘 사용한다. 커피믹스를 즐겨 마시던 시니어들이 커피머신을 구입하여 나만의 홈카페를 차리고, 외모 관리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뷰티 케어 기기를 구매한다. 의류 관리기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멋지게 보이고 싶어하는 시니어 패션 피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년 전에는 55~69세 전체의 가전 구입금액이 25~39세 전체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0.7배를 넘어섰다.
은퇴를 앞두거나 퇴직 후 새 차를 사는 걸 꺼리던 분위기도 바뀌었다. 40세 미만의 젊은 층에서는 자동차 구입이 줄어든 반면 50대를 중심으로 자동차 구입을 위한 지출이 늘어났다. 이제는 55~69세 전체의 자동차 구입금액이 25~39세에 전혀 밀리지 않는데, 5년 전만 해도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큰 변화가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높아진 물가와 할부 금리로 인해 젊은 세대는 보유하고 있던 차량도 팔아버리는 상황인 반면, 액티브 시니어들은 새로운 차량의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
액티브 시니어를 탐구하되, 전체 시장을 바라봐야
최근 다른 시장에 비해 액티브 시니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이들의 높아진 구매력과 인구 증가에 힘입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전체 인구 중 액티브 시니어의 인구가 한동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중요도는 확대될 것이다. 통계청 잠재인구추계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의 성향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55~69세의 인구는 2029년 전체 인구 중 24.7%를 차지하며 인구 비중의 정점을 찍는다.
왕성한 소비를 보이는 또다른 계층인 25~39세의 청년과 비교할 때, 인구 비율이 2022년 기준 1.1배에서 2057년 2.1배까지 꾸준히 성장하여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거대한 소비 집단이 될 전망이다. 연령대별 1인당 소비 규모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어도, 현재 25~39세의 0.9배 수준인 55~69세의 전체 소비지출 규모는 2057년 1.7배에 이르기까지 인구 효과 만으로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이 명백히 예견됨에 따라, 이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들의 성향을 꿰뚫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은 ‘나이 답게’ 살아가기보다 ‘나 다운’ 삶을 추구하며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DIY(Do It Yourself)형 소비에 능숙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들의 자기주도적 소비 행태는 이들의 입맛에 딱 맞는 상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액티브 시니어는 예전보다 더 젊은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어른으로서의 품위 역시 지키고자 하는 상반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젊은이와 시니어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들어맞는 상품과 서비스에 목말라 있다. 이것이 이들을 단순히 시니어로 규정하여 공략하는 마케팅 전략이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지금뿐 아니라 미래의 액티브 시니어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젊은 세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분석하여 이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최근 몇 년간의 흐름과 다르게 MZ세대의 영향력이 갑자기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단순히 당장의 매출 만을 기준으로 시장의 중요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흘러 결국 액티브 시니어에 편입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이들이 미래의 핵심 고객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액티브 시니어를 공략하기 위한 지금의 전략들은 현 시점의 이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으로, 미래의 액티브 시니어는 이와 또 다른 특성을 보일 수 있다. 특히 젊은 층은 다양한 소비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아 이들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