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소득재분배 정책이 성장을 저해한다는 ‘오해’
경제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좋은 것 하나를 선택하다 보면 다른 하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예가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의 상충관계다. 소득재분배를 촉진하는 정책은 형평성을 늘리지만 효율성을 저해해 성장을 낮춘다.
이는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섣불리 소득재분배 정책을 펼쳐 성장을 늦추기보다 더욱 성장률을 높여 불평등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도록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소득불평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분위기다.
첫째, 성장을 계속해도 분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가장 앞서 있다는 미국에서조차 상위소득 1%에 소득이 집중되면서 성장을 통해 소득불평등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성장을 통해 빈곤을 거의 완전히 해결했다고 봤다. 성장이야말로 빈곤을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선 1970년대 이래 저숙련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전혀 상승하지 않았다. 그 혜택은 오직 고학력 숙련 노동자의 몫이었다. 최근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조하듯이 지난 10년간 늘어난 소득의 대부분이 상위 1%에 몰렸다. 극단적인 부의 집중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성장을 위해 소득불평등을 꼭 감내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위기의 원인으로 미국의 소득분배 악화를 제시하는 학자들은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 정치·경제적 불안을 야기하고 심지어는 경제위기를 초래해 중장기적인 성장에 타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된 라구람 라잔 미 시카고대 교수가 이런 입장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 같은 견해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이 낮은 국가에서 보다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셋째, 소득분배 악화를 해소하기 위한 재분배 정책이 효율성을 크게 악화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지닌다. 소득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해가 된다 해도, 소득재분배 정책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이유가 있다. 소득재분배 정책이 개인의 인센티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 효율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연구는 소득재분배 정책이 소득불평등 개선을 통해 성장에 기여하는 효과가 효율성을 가로막아 성장을 낮추는 효과보다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모든 소득재분배 정책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도한 소득재분배 정책은 일할 의욕을 떨어뜨려 성장을 저해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항상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들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소득재분배를 통해 형평성을 증진시키면서도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즉 형평성과 효율성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또 다른 IMF 연구는 이에 대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소득층에게 의료 혜택과 교육을 확대해 이들이 바람직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이런 정책의 좋은 예로 제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실업자에게 재교육을 받는 조건하에서 혜택을 부여해 새로운 출발을 돕는 것도 형평성과 효율을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는 좋은 정책이다. 보다 창의적인 정책을 개발하면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소득불평등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540032]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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