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책 당국자들은 매년 첫날 신년사를 통해 담당 분야에서 새해에 펼쳐질 상황에 관한 당국의 견해를 밝히고 개략적인 정책적 의지도 표명한다. 대부분 의례적인 표현이나 전년도 말 현재 정책 방향을 되풀이하는 데서 그치지만, 시장 참가자들은 그런 의례적인 표현 속에 어떤 암시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매년 꼼꼼히 읽게 된다.
한국은행 총재의 신년사는 어느 당국자의 신년사보다 더 꼼꼼히 보게 된다. 자본시장이 발달하고 통화정책 운용이 정교해지면서 중앙은행은 정례회의 정책 금리 목표를 결정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계기를 통해 당국이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요인 등을 경제 주체들에게 공개함으로써 미래 통화정책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
올해 이창용 총재 신년사를 다룬 연합뉴스 기사는 제목에 "부동산PF 등 금융불안에 철저 대비"라는 부분을 포함했고, 부제로는 "물가안정 최우선…경기회복·금융안정도 고려한 정책 조합 찾아야", 그리고 "재정확대·부채증가에 의존한 임기응변식 성장 시대 지나" 등 두 구절을 선정했다.
기사 내용 중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대부분 중앙은행이 고물가에 대응해 한 방향으로 달린 것과 달리 올해는 주요국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나라별 정책이 차별화할 것"이라며 "올해 한은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회복과 금융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통화정책 방향에 관한 이 총재의 발언은 생각하기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여지가 커서 결국 원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앙은행 총재의 공식적인 발언은 그 발언을 작성할 당시의 시장의 예상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즉, 이르면 올해 2분기, 늦어도 3분기부터 정책금리가 인하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올해 신년사는 1년 전 신년사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특징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지난해 신년사 보도자료는 기자들을 위한 요약 부분이 상세히 제시됐으나, 올해는 요약 없이 신년사 전문만 공개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생각하기 달렸으나, 아무래도 시장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워낙 확고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요약'을 제공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통화정책 방향에 관한 지난해 표현은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정책기조를 지속해야 하겠습니다. 금융·외환시장의 안정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 입니다. 대내외 리스크 요인의 전개양상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에는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하겠습니다"라고 세 가지 목표를 각각 별도 문장으로 제시했었다.
우선순위가 뚜렷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올해는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 회복과 금융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교한 정책조합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라고 하나의 문장으로 제시했다. 즉, 물가안정이 최우선 정책 목표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경기회복과 금융안정 순서로 정책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 '경기회복'이라는 목표는 지난해 우선순위에 전혀 들어있지 않았는데, 올해는 당당히 두 번째 위치에 포함됐다. 앞에서 필자는 신년사를 시장의 예상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시사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제언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플레이션이 서프라이즈만 아니라면 경기회복이 최우선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신년사에 포함된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재정의 확대와 저금리에 기반한 부채 증대에 의존하여 임기응변식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라는 문구도 여러 언론 보도가 보도했다.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그런 기대가 큰 것을 잘 알고 있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장이 둔화해도 금리를 인하할 수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무리한' 인하 예상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로 위에 소개한 문장에 이어 "다행히 최근에는 재정적자 규모가 축소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해 성장 둔화가 심각해도 절대로 금리 인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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