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이 1년 넘게 세계 경제를 짓눌러 오다가 이제 1단계 합의에 이르렀다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새해 시작과 함께 랠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1단계 합의문 서명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낙관론은 밀고당기기 식 잡음은 있겠지만 결국 각국의 국내 정치 및 경제 상황을 고려해 결국 단계별로 합의를 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한다.
반면, 비관적인 전망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양국 갈등은 결국 패권 다툼을 바탕에 깔고 있으므로 결국 미국이 중국에 세계 패권을 빼앗길 때까지 갈등이 계속되거나, 아니면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패권을 공고히 하거나 하는 상황이 확실해질 때까지 잡음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제3의 전망은 양국이 물리적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상황을 염두에 두겠지만 현재로서는 대세는 아닌 듯하다.
이런 상황을 대하면서 최근 읽은 책 가운데 과거 세계 패권 경쟁의 역사를 정리하고 안팎의 상황을 소개한 작품이 있어 공유하려 한다.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이라는 부제가 붙은 Graham Allison의 『Destined for War』는 출간된 지 몇 해 지난 책으로 국내에 한글판도 나와 있다(『예정된 전쟁』, 부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제목에도 사용된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은 1995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하버드대 벨퍼 국제문제연구소장을 지낸 정치학자인 저자가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 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해올 때 극심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하는 현상(the natural, inevitable discombobulation that occurs when a rising power threatens to displace a ruling power)"을 지칭하며 한 표현이다. 저자는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이 급격히 부상하던 아테네와 이를 견제하려는 스파르타가 빚어낸 구조적 긴장 관계의 결과였다고 설명하고,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 불렀다.
그는 당시 상황이 현재의 미·중 관계와 판박이인데, 지난 500년간 지구에서 발생한 투키디데스 함정은 16차례였고, 이 중 12차례가 전면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엄밀히 말하면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우선 패권 다툼이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 16차례 가운데 12차례나 되므로 패권 다툼으로 인한 전쟁은 피하기 어렵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통계를 달리 보자면, 16차례 패권 다툼 가운데 4번은 전쟁을 피해 평화적인 패권 이양이 이루어진 것이니, 미-중 분쟁도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정리한 16차례 패권 경쟁 가운데 온전히 20세기에 속하는 것은 영국과 미국, 영국과 독일, 소련/프랑스/영국과 독일, 미국과 일본,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경쟁 등 모두 6차례인데, 전쟁으로 이어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각 3회로 같다. 즉, 20세기로 접어들어서 인류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지혜를 더욱 잘 발휘했고, 또, 그런 노력이 실제로 평화적인 갈등 해결로 이어졌다는 말이 된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절대 작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 책에서는 줄곧 미-중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하려는 말은 결코 전쟁 불가피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패권 전쟁의 범위와 피해가 막대하므로 인류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리라 믿는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과거의 패권 전쟁이 불가피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영국과 미국,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을 피할 수 있었는지가 될 것이다.
저자는 패권 전쟁을 모면하기 위한 12가지 상황을 제시한다(pp. 187-213). 어느 한 가지 손쉬워 보이는 것은 없지만, 핵무기를 사용한 전면전은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대인만큼 인류는 과거 실패 사례보다는 성공 사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12가지 해법 가운데 마지막 항목("국내 상황이 결정적이다")은 특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저자는 "국내적으로 견조한 경제 상황을 유지하고 정부가 잘 유지되며 국민들로부터 단결된 지지를 받는 국가가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상황을 점한다"고 정리한다. 즉, '국내 상황'이 국제 정세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미-중 패권 갈등이 반드시 전면적인 물리적 충돌로 이어진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예언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아무래도 물리적 출돌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인류가 과거에 패권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전례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영문 책 정보(amazon.com 최신판 기준):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Paperback: 400 pages
Publisher: Mariner Books; Reprint edition (August 7, 2018)
Language: English
ISBN-10: 1328915387
ISBN-13: 978-1328915382
Product Dimensions: 5.3 x 1 x 8 inches
https://www.amazon.com/Destined-War-America-Escape-Thucydidess/dp/1328915387
한글판 정보(네이버 책 정보 기준):
예정된 전쟁: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역자 정혜윤
세종서적
2018.01.22
원제Destined for War
페이지 516
ISBN ISBN 9788984076778
판형 규격외 변형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12171
본 블로그에 소개한 과거 관련 글들:
(보고서)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3가지 시각 - 한국은행
https://choonsik.blogspot.com/2016/10/3.html
(정리) 미·중 무역 분쟁 실체와 5대 쟁점 초간단 정리
https://choonsik.blogspot.com/2019/05/5.html
(보고서) 미-중 통화ㆍ금융 패권 경쟁 상황 정리
https://choonsik.blogspot.com/2019/12/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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